인기리에 방영 중인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누리집 갈무리
“세상이 말세지. 불륜을 해도 저렇게 당당하니! 확 병원에 다 폭로해야 돼.”
“원래 못가져본 것에 미련이 많은 게 인간임.”
“그런 것 같음. 못가져 봐서 저리 안달이지, 같이 살아보면 절대 안저렇지!”
“남자 다 거기서 거긴데 승희는 저 나이까지 모르다니 ㅠㅠ”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방송되는 주말 밤, 사람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친구끼리 드라마를 함께 보며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네이버 검색 창에 <닥터 차정숙>이라고 치면 첫 화면에 뜨는 ‘오픈톡’에 입장해 함께 드라마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지난 3월 드라마 시작과 함께 개설된 이 대화방의 방문자 수는 2만7천명에 달한다.
오픈톡 같은 개방형 소통 수단에 빅테크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폐쇄적이고 무거운 ‘지인간 대화’보다 가벼운 ‘관심사 기반 익명 대화’로 소통의 흐름을 바꾸는 전략을 앞다퉈 강화하고 있다. 오픈톡이란 스포츠 중계나 드라마 등 관심사를 함께 즐기며 수다를 떠는 온라인 공간을 말한다. 카페 가입 등 별도 절차 없이 익명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라 부담이 없는 데다 관심사에 대한 몰입감은 높여주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때는 네이버 오픈톡에 278만명이 몰렸다 .
지난 3월 드라마의 시작과 함께 네이버에 개설된 <닥터 차정숙> 오픈톡의 방문자 수가 2만7천명에 달한다. 누리집 갈무리
네이버가 방송·웹오리지널·연예 관련 오픈톡 서비스에 오는 6월12일부터 실명 기반 본인확인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9월 방송·연예·스포츠 분야를 대상으로 오픈톡 서비스를 출시한 데 이어 두 달 뒤 스포츠 분야 오픈톡에 먼저 본인확인제를 도입했다. 다음달 12일부터는 이를 모든 오픈톡 서비스로 확대하는 것이다. 오픈톡이 ‘이용자를 끌어모으는’ 홍보 기간을 지나 ‘게시자 단속으로 커뮤니티 수준을 끌어올리는 단계’로 넘어가는 셈이다.
최수연 네이버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취임 이후 관심사 기반 차세대 커뮤니티를 강조해왔다. 지난해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는 “더 큰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중심에 커뮤니티가 있다”며 “스포츠·드라마·증권·이슈 키워드 등 실시간 커뮤니티 수요가 존재하는 네이버의 다양한 서비스 영역으로 오픈톡 참여 접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본인확인제를 통해 오픈톡 커뮤니티 수준을 높이고, 향후 증권·부동산 등 다른 분야로 오픈톡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는 21일 “내부 테스트 결과, 본인확인제를 오픈톡에 적용하면 절대 다수의 스팸 생성 등이 사전에 차단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댓글 작성 때도 본인확인을 요구하고 있어, 현재 오픈톡 이용자의 90% 이상이 본인확인을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본인확인제 도입 이후에도 오픈톡 대화방 안에서의 익명성은 유지된다. 본인확인제는 네이버가 해당 계정의 본인 인증 여부만 확인하는 제도로, 인터넷 실명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오픈톡 참여자는 본인이 원하는 이름으로 활동할 수 있고, 언제든 대화창을 열고 닫는 방식으로 참여와 중단을 반복할 수 있다. 가입 기반으로 본인이 드러난 채 활동해야 하는 카페·밴드 등의 폐쇄형 서비스와 다른 점이다.
‘무료 문자메시지’를 앞세워 ‘국민 메신저’ 자리를 꿰찬 카카오톡도 지인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닌 ‘관심사 기반 소통’ 도구로 변화를 꾀한다. 카카오는 지난 17일 카카오톡 앱 내 세번째 탭에 ‘오픈채팅’ 기능을 별도 탭으로
신설했다고 밝혔다. 카카오 오픈채팅은 모르는 사람 끼리도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대화방에서 소통하는 기능이다. 전화번호 등을 통한 친구 추가 절차도, 이름을 밝힐 필요도 없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지난 4일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지인과의 대화라는 ‘친구 탭’이 굉장히 무거운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조금 더 가벼운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 더 많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오픈 채팅을 세번째 탭에 전면 배치해 일간 이용자 수를 기존 탭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