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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뒤통수 치는 ‘다크패턴’…AI 날개 다는데, 규제는 속수무책

등록 2023-07-03 06:00수정 2023-07-03 14:26

날로 교묘해지는 플랫폼의 ‘눈속임 마케팅’ 수법
그래픽 고윤결
그래픽 고윤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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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월 4990원인 ‘쿠팡 와우 멤버십’을 해지하려던 조아무개(42)씨는 눈 뜨고 코 베인 듯한 경험을 했다. ‘멤버십 관리’ 맨 아래에 조그맣게 놓인 ‘해지하기’ 버튼을 간신히 찾아 눌렀는데, 혜택을 정말 포기하겠냐, 이유가 뭐냐는 질문과 함께 ‘혜택 유지하기’ 버튼이 기본 선택된 페이지로 잇달아 넘어갔다. 헷갈려서 기본 선택 버튼을 눌렀더니 “멤버십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안내가 나왔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간신히 해지를 마치고 난 뒤에는 ‘무료 혜택’을 받으라는 광고가 따라붙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료 혜택을 클릭해봤더니 “언제든 해지 가능, 결제하고 시작하기”라는 버튼이 나왔다. 이 버튼을 클릭하자, 아무런 후속 절차도 없이 ‘계좌에서 쿠팡와우회원 월회비 4990원이 출금됐다’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조씨는 “멤버십을 해지할 때는 너무도 복잡했는데, 재가입을 할 때는 착각해서 한 클릭 한번에 결제까지 끝나버려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의 ‘착각’을 먹잇감 삼는 온라인 플랫폼들의 ‘다크패턴’ 행태가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다크패턴이란 사업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착각, 실수, 비합리적인 지출 등을 유도하는 상술을 일컫는 용어다. 우리 말로 ‘눈속임 마케팅’이라고 풀이되곤 하지만, 실상은 ‘사기’에 가깝다. 규제당국이 단속 강화와 법 개정에 나섰지만, 다크패턴은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더해지며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쿠팡의 이같은 해지·가입 방식은 얼마 전 미국에서 규제당국이 나서서 소송까지 제기한 아마존의 ‘다크패턴’과 같다. 지난달 21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이 이용자들을 속여 유료 회원제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하게 하면서 탈퇴는 복잡하게 만든 ‘다크패턴’으로 연방거래법과 온라인 신뢰회복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월 12.99달러(1만7천원)에 무료 배송과 동영상 서비스 무료 시청 등을 제공하는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는 2억명이 넘는다.

연방거래위에 따르면, 아마존은 프라임 회원이 아니면 물건 구입을 어렵게 하고, 탈퇴 과정을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마존이 지난 4월 탈퇴 절차를 일부 개선하기 전까지, 이용자들은 프라임 회원을 탈퇴하기 위해서는 평균 4개 누리집 화면에서 6번의 클릭과 15가지의 옵션 취소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에 비해 프라임 회원 가입은 한두번의 클릭으로 가능했다. 이같은 아마존 프라임의 작동 방식은 국내 최대 온라인 쇼핑몰로 꼽히는 쿠팡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쿠팡의 와우 멤버십 해지·재가입 과정에선,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의한 다크패턴의 네가지 유형을 모두 볼 수 있다. 통상적인 기대와 전혀 다르게 화면·문장 등을 구성해 소비자의 착각이나 실수를 유도했고,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 수집·분석에 과도한 시간과 노력이 들게 했다. 또 소비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특정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을 통해 소비자의 예상치 못한 지출을 유도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쿠팡은 다음날 무료배송과 같은 와우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멤버십 혜택과 조건을 충실하게 안내하고 있고, 언제든 멤버십 해지가 가능하며, 이용내역이 없으면 해당 월 이용료를 환불한다. 단순히 프로모션 메시지를 누르는 것만으로 바로 회원이 되지 않으며 가입 버튼을 클릭해야만 완료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신종 다크패턴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알뜰구매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에 들어갔던 이아무개(47)씨는 “[정보] 파리바게뜨 13000원→3000원”이라는 게시글을 보고, 회원이 올린 할인쿠폰 관련 정보인가 싶어 클릭했는데 갑자기 배달앱 사이트로 연결돼 깜짝 놀랐다. 이씨는 “정보 게시글에 올릴 때 회원들이 달게 돼 있는 말머리 형태까지 똑같아서 광고인 줄 몰랐다”며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하는 건 소비자를 우롱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조아무개(30)씨 역시 한 네이버 카페에서 “여권을 새로 만들었다”는 게시글에 달린 “해외용 어댑터는 챙기셨나요?”라는 댓글의 링크를 눌렀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조씨는 “댓글에 덧붙여진 링크가 댓글러가 공유한 추가 정보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어댑터를 구매할 수 있는 스마트 스토어로 연결됐다”며 “회원이 쓴 댓글을 가장하는 방식으로 광고를 붙이는 행태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지난 4월 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이용자가 착각할만 한 게시물이나 댓글을 쓰는 방식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애드’를 선보였다. 두 달 동안 많은 이용자들이 ‘착각’에 시달렸지만, 최근 ‘다크패턴 규제 강화’ 방침을 발표한 공정거래위원회조차 이같은 신종 다크패턴에 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언론과 국회의 지적이 이어지고 나서야 “다크패턴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며 네이버로 하여금 자체 개선에 나서도록 했다. 다크패턴 설계자한테 대책을 주문한 꼴이다.

네이버는 “후기성 내용 등 혼동 광고에 대해 개선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공정거래위는 이 달 중 다크패턴을 규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4월 당정협의회에 다크패턴의 문제의 심각성을 보고하고 ‘온라인 다크패턴으로부터 소비자 보호방안’을 발표한 것에 이은 후속 작업이다. 국회에선 다크패턴을 규제하기 위해 송석준·홍정민·이용우·이성만·김용판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5개나 상정돼 논의 중이다.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 회의에서는 “다크패턴을 막기 위해 무료 체험이 유료 멤버십으로 전환될 때 각각 별도 계약을 하도록 할 지”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만큼 공방이 크다는 의미다. 이날 회의에서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그 (별도 계약을 강제할) 경우 무료 체험 서비스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했고, 김종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정위에서 무슨 사업자 마케팅 전략까지 고민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시민단체들 “다크패턴은 빅테크 독과점 굳히는 밑재료”

정보인권·시민사회단체 쪽은 다크패턴이 빅테크 독과점 체제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밑재료라고 지적한다. 다크패턴을 통해 광범위하게 수집된 이용자 개인정보가 맞춤형 광고에 사용되며 이용자들을 빅테크 플랫폼 안에 가둬놓는 ‘락인(lock-in) 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인권연구소,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정보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 종로구 엔피오피아홀에서 연 ‘빅테크,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거인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다크패턴이 이용자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상품·서비스를 구매해 불필요한 지출을 하도록 유도할뿐 아니라,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으로 이어지며 무분별한 맞춤형 광고에 노출될 가능성 또한 높인다”고 입을 모았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다크패턴은 용어만 새로울 뿐, 인터넷 비즈니스 초창기부터 있어 온 익숙한 부당거래 행위”라면서, “소비자의 부주의를 활용해 구매, 결제, 회원가입, 멤버십 유지, 개인정보 제공 등 원치 않는 행위를 유도하기가 개인용컴퓨터(PC) 환경에서보다 모바일 환경에서 훨씬 쉬워졌다”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특히 대형 플랫폼에서 발생한 피해 접수 사례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라며 “규제당국이 다크패턴과 관련해 플랫폼 기업들 책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하나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위원(법무법인 두율 변호사)은 “다크패턴을 활용한 ‘개인정보 저커링’(Privacy Zuckering)이 빅테크 플랫폼들이 맞춤형 광고를 더 정교하게 제공하는 밑바탕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정보 저커링이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이름을 딴 표현이다. 메타 등 빅테크 플랫폼들이 개인정보 공유 설정의 기본값을 불필요한 정보까지 모두 공유하도록 설정해, 이용자들이 의도치 않게 많은 개인정보를 기업에 내주도록 유도하는 관행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다크패턴으로 인한 의도치 않은 불리한 의사결정엔 법적 효력을 부여하지 않는 등 이용자들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보라미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위원(법무법인 디케 변호사)은 “어떤 기업들은 이용약관이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보다 긴 경우도 있어 정말 읽으라고 만든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며 “이용자가 동의해야 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진 계약은 무효처리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나 위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프라이버시 권리법에 ‘다크패턴을 이용해 얻은 개인정보 수집 동의에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명시한 반면, 국내 법엔 관련 규정이 없다. 다크패턴이 불러온 결과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전자상거래법 등을 각각 적용해야 해 제재에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다크패턴의 유형이 너무 다양해 법에 사전 규제 방식을 명시하기 어렵다면, 이용자들이 사후에라도 다크패턴에 의한 의사결정을 철회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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