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의 종말
지난 5월 <문화방송>은 가족을 각목으로 살해하는 끔찍한 장면을 제대로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은 채 9시 뉴스 시간에 시청자들에게 내보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말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눈길에 미끄러진 버스에 치여 현장에서 숨지는 시민의 참혹한 모습도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모두 현장에 설치된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화면에 잡힌 내용이 발단이 됐다.
요즘 방송 뉴스는 예전보다 훨씬 생생해졌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 순간도 생생하게 포착해서 보도한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아래로 추락한 승객을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에 앞서 구조하는 긴박한 장면도 전파를 탄다.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 텔레비전 덕분이다.
지은 지 오래된 서울 시내 곳곳의 아파트 단지들은 폐쇄회로 카메라 설치에 너도나도 나서고 있다. 놀이터와 각 동의 현관과 계단 입구, 엘리베이터 내부 등에 어김없이 폐쇄회로 카메라가 설치됐다. 2008년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는 한 초등학생의 모습이 담긴 엘리베이터 폐쇄회로 화면이 공개된 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다. 주민들은 방범 효과와 경비 인력 절감 등의 이유로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다.
하지만 폐쇄회로 화면에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기록되는 것에 비해 삭제 과정의 투명성은 매우 낮다. 서울의 한 아파트 관리소 직원은 “최근 폐쇄회로 화면은 촬영대상이 움직일 때만 동작을 감지해서 기록하기 때문에 설치장소에 따라 기록 보유기간이 다르다”며 “최신 영상이 가장 오래된 영상을 밀어내면서 기록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 뒤 삭제한다는 기준은 없고 대략 2~3개월 안의 정보가 기록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현재 사용중인 1테라바이트의 하드디스크를 더 늘리면 저장기간도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개인이나 민간시설이 설치한 폐쇄회로 카메라의 기록 범위와 저장 기간을 제한하는 규제는 전혀 없고, 현실적으로 이를 제한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운영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용경 창조한국당 대표는 18일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폐쇄회로 카메라에 저장된 개인정보가 제대로 삭제되고 있는지 전혀 관리·감독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행정안전부가 1만9086대, 경찰청이 2만2234대를 운영하며 날마다 100분짜리 장편영화 190만편 분량을 녹화하고 있음에도, 기록된 영상이 언제 어떤 간격으로 삭제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는 얘기다. 현재 공공기관의 화상정보 보유기간은 30일이고, 인권보호를 위해 수사 사무실과 유치장에 설치한 경우엔 90일 동안 보유하도록 돼 있다. 이 의원은 “국가기관의 관리 부재도 문제지만, 250만대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 부문의 폐쇄회로 카메라에 대해서는 실태가 전혀 파악도 되어 있지 않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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