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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지구 배경화면’ 히피사상이 숨어있다

등록 2011-11-28 15:32수정 2011-11-28 16:04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에 실린 스티브 잡스 기사.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에 실린 스티브 잡스 기사.
스티브 잡스가 19살 읽었던 잡지 ‘홀 어스 카탈로그’의 표지
명언 “stay hungry. stay foolish”도 같은 잡지에 실렸던 것
“stay hungry. stay foolish.”

지난달 세상을 떠난 애플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가 2005년 미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20분에 걸친 축사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명언중 지금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유명한 말이다. 직역하면 “배고픈 채로 남고, 어리석은 채로 남아라”라는 뜻이지만 성장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젊은 때의 가난함과 어리석움을 잊지 말라는 역설적 경구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 말은 스티브 잡스가 처음 쓴 말이 아니다. 그는 스탠포드 연설에서 19살때 읽었던 잡지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에 써 있는 말이라고 소개했다.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플리’라는 경구는 이 잡지 1974년 10월호에 수록돼 있다.

아이폰 지구 배경화면
아이폰 지구 배경화면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 최근호(11월21일)는 잡스의 자서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생애의 지침서와 ‘잡스이즘’의 뿌리와 신념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잡스에게 큰 영향을 준 잡지로 알려진 <홀 어스 카탈로그>는 히피를 위한 ‘삶의 수첩’과 같은 잡지로 알려져 있다. 광고를 싣지 않고 사람이 ‘자력으로 살아가기 위해 도움이 되는 도구’를 사용자 시점에서 평가하고 검증하는 편집방침을 고수했다. 목공 용구와 공구 등 자작을 위한 도구를 도면을 첨부해 리뷰하고 지도와 철학서 과학서 등도 소개했다. 1968년 창간돼 한권에 5달러씩 약 1천부로 시작했으나 미국 밖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1971년 수십만부로 부수가 늘어났다. 창간자인 스트워드 브랜드는 창간사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현대는 정부와 대기업, 공교육, 교회 등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살아갈 것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여기서 이를 위해 도움이 되는 도구를 소개한다.”

1960년대 후반 반권위주의와 사회변혁의 공기를 빨아들이면서도 베트남 반전운동 등 정치운동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어디까지나 개인의 손에 힘을 되돌려 자력으로 삶을 갱신하는 것이 이 잡지의 사상이었다. 브랜드는 지금도 환경운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1938년 태어난 그는 에코놀로지라는 발상이 맹아기를 맞고 있던 시기에 스탠포드대학에서 생물학을 배우고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일반 환경운동가와는 조금 다르게 기계문명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도구와 테크놀로지의 진보에 의해 지구환경은 좋아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개인의 손에 도구를’이라는 구호는 브랜드 사상의 일환으로 잡스의 ‘컴퓨터를 개인의 손에’라는 발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잡지에 ‘퍼스널 컴퓨터 기기’ 기사가 등장한 것은 1974년 가을호로 스티브 잡스가 애플 공동창립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개발한 ‘애플 1’이 발매된 것은 그 2년 뒤인 1976년이다.

스티브 잡스는 “당시 10대로 히피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던 사람에게 있어 이 잡지는 바로 ‘바이블이었다’”고 언급했다. 잡스가 얼마나 이 잡지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이 잡지의 표지 디자인을 보면 금새 눈치챌 수 있다.

검은색을 배경으로 지구가 비추고 있는 이 잡지의 표지디자인은 아이폰 3G나 3GS 등 로그화면을 연상시킨다.


〈Be Here Now〉(람 다스 지음)
〈Be Here Now〉(람 다스 지음)
잡스가 10대 때 커다란 영향을 받은 또하나의 서적이 〈Be Here Now〉(람 다스 지음)이다. 잡스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월반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지만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홈스스테드 하이스쿨에 다닐 무렵에는 마리화나(대마초의 일종)를 피는 등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입양아라는 트라우마가 그를 괴롭히던 시기였다. 그 시기를 전후해서 만난 것이 명상 가이드북 〈Be Here Now〉이다. 이 책에 강하게 감화된 잡스는 인도 방랑을 결의하고 대학 동급생 다니엘 코트케와 인도여행에 돌아온 뒤 1975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선센터 ‘하이크 전당’에 자주 다녔다. 당시를 아는 선승 레스 케이(78)는 “잡스는 1년반 이곳에 다니며 선을 공부했다. 언제나 선승이 입고 있는 듯한 셔츠에 무릎에 구멍이 뚫린 진바지 차림이었다. 선승인 지노 고분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선승 지노 등과 회합이 끝난 뒤 잡스는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일이란 무엇인가?” 처음 받은 질문치고는 너무 인상깊었다고 한다. “일의 가치는 무엇인가? 일에 의미는 있는 것인가? 등 일과 인생에 대해서 상당히 기본적인 의문을 갖고 답을 찾지 못한 듯했다. 철학과 같은 추상적인 감각이 아니었다. 나 자신 대답을 주지 못할 정도로 너무 기본적인 질문이었다.”

이밖에 “진리는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도 했다고 한다.

선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져 선적인 아트와 미적 감각에도 매혹됐다고 한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갖은 것은 ‘선’과 ‘스페이스’. 단순함과 미, 마음편함을 선적인 공간에서 느끼고 그런 선의 요소를 제품에 도입하겠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잡스가 반년쯤 다녔던 리드 대학에서 유일하게 흥미를 갖고 있던 수업이 서양의 문자서식인 ‘캘리그래픽’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서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던 듯 하다.

1984년 7월 애플의 일본 판매개시 즈음해서 나온 캠페인용 포스터에는 유명화가의 수묵화가 사용됐다. 그 옆에 붓글씨로 ‘천지와 애플’이라는 글자가 한자와 가다카나(일본의 문자)로 쓰여져 있다.

김도형 선임기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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