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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4일 천하’로 끝난 KT의 기습공격

등록 2012-03-10 18:15

KT가 삼성 스마트TV에 대해 초고속인터넷 이용 대가로 망 분담금 지급을 요구하며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지난 2월1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가전매장에 진열된 스마트TV에서 ‘연결 중’이라는 문구가 보이고 있다.
KT가 삼성 스마트TV에 대해 초고속인터넷 이용 대가로 망 분담금 지급을 요구하며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지난 2월1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가전매장에 진열된 스마트TV에서 ‘연결 중’이라는 문구가 보이고 있다.
KT와 삼성의 초고속인터넷망 차단 전쟁이 남긴 것
이코노미인사이트 바로가기

지난 2월10일 케이티(KT)가 삼성전자의 스마트TV에 대해 초고속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면서 국내에서도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비난 여론과 방송통신위원회의 합의 중재로 인해 KT는 닷새 만에 접속을 재개했지만, ‘땜질 봉합’일 뿐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삼성전자와 KT가 갈등의 당사자였지만 모든 인터넷 사용자와 통신업체, 디지털 기기 제조업체 간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고차방정식이다. 스마트폰과 스마트TV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로 점점 더 많은 데이터를 폭식하는 디지털 세계 거주민이 당면한 생태계 차원의 과제인데, 현재로선 모두를 만족시킬 해결책이 없다.

KT의 기습 공격

지난 2월9일 KT는 삼성전자 스마트TV에 대해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겠다고 밝히고 이튿날부터 실제 차단에 들어갔다. KT는 “다수의 인터넷 이용자를 보호하고 시장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인터넷 통신망을 무단 사용하는 삼성의 스마트TV를 차단할 수밖에 없다”며 “통신망에 무임승차 데이터가 폭증하면 정보기술 생태계가 공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스마트TV가 기존 인터넷TV(IPTV)에 비해 5~15배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트래픽 저하에 대비한 ‘피해 예방 차원에서’ 특정 회사 제품에 대해서만 인터넷 접속을 끊겠다는 게 KT의 논리였다. 스마트TV가 앞으로 사용할 데이터 트래픽을 위해 인터넷 통신망 투자비가 필요한 만큼, 스마트TV를 팔아서 돈을 버는 삼성전자도 통신망 건설 비용을 분담하라는 게 KT의 노골적인 요구였다.

삼성전자가 즉각 반발하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KT에 엄중 제재를 경고했지만, 이튿날인 2월10일 오전 9시부터 KT는 인터넷 차단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법원에 ‘접속 차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며, 비난 여론과 소비자단체의 성명 등이 잇따랐다. 결국 KT는 방통위 중재 끝에 닷새 만인 2월14일 오후 5시30분부터 차단을 풀었다.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2월15일 전체 회의에서 사용자를 볼모로 한 KT의 일방적인 통신망 차단 행위에 대한 징계를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KT의 삼성전자 스마트TV 인터넷 차단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돌발행위인데다, 동일한 상황인 국내 경쟁업체조차 어이없어하는 갑작스러운 조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트래픽 과다로 인한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잠재적 우려’를 상정해 즉각 통신망 차단에 나섰다는 점, 특정 회사의 제품만 대상으로 했다는 점 등이 비상식적이다.

KT와 똑같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스케이브로드밴드(SKB)와 엘지유플러스(LGU+)는 “스마트TV로 인해 문제가 될 수준의 트래픽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차단 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KT는 LG전자의 스마트TV에 대해서는 차단하지 않았다면서 그 이유로 “LG전자는 통신망 투자비 분담을 다룰 협상 테이블에 나오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KT는 LG전자에서 아직 통신망 구축 비용을 받아내거나 분담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것은 아닌 상태다. 다만 삼성전자와 달리 LG전자는 협상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게 KT가 삼성과 LG전자를 차별 대우한 이유다.

삼성과 LG 차별한 이유

삼성전자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삼성전자 쪽은 “세계 120여 개국에 스마트TV를 수출하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KT 같은 통신업체의 요구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정부가 주관하는 망 중립성 포럼에서 이미 논의하는 문제에 대해 KT가 별도의 협상 자리를 요청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KT와 삼성전자는 지난 2월13일 각각 언론간담회를 열어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KT는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TV가 더 확산되면 데이터 트래픽이 많아져 갑작스러운 ‘전면 차단’(Blackout)이 올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실제로 스마트TV의 트래픽은 KT가 평소 가입자에게 홍보한 회선 속도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양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엇갈리는 양쪽 주장을 판별할 실증적 자료인 트래픽 데이터는 제시되지 않았다. KT 대외협력실 김효실 상무는 “아직까지 트래픽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스마트TV는 고화질 영상 같은 대용량 트래픽으로 인한 통신망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에 통신망 보호 차원에서 (예방적) 접속 차단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전자에 요구해야 할 통신망 투자 분담을 위한 근거와 데이터는 없다”며 “앞으로 협상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의 궁색함을 인정했다.

국제적으로 사례가 없고, 절차적 정당성과 명분도 빈곤해 여론과 당국의 눈총 속에 닷새 만에 꼬리를 내린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KT의 거사 배경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스마트폰 시대에 통신사·제조업체·사용자·당국이 모두 해법이 선명하지 않은 ‘뜨거운 감자’인 망 중립성을 건드린 탓이다. KT에서 동원한 방법이 논리와 명분이 부족한 ‘막무가내’식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이번 일을 해프닝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중대한 이슈가 있다.

과거의 실수 반복하지 않으려는 KT

스마트폰 이후 유·무선 데이터 통신량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고 있다. 아이폰이 도입된 2009년 11월부터 본격화한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이동통신 데이터 트래픽은 3년 만에 100배 늘어났다. 이동통신사들이 앞다퉈 제공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결국 롱텀에볼루션(LTE·Long Term Evolution)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사라지고 종량제가 적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통신사들에게 ‘반짝 호황’을 가져다줬지만, 이동통신사들은 마케팅 수단으로 내세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의 부메랑을 맞았다. 이용자들의 급증하는 데이터 소비에 부응하고 통신사가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쏟아부어야 하는 통신망 투자비가, 결국 무선 수익을 갉아먹으면서 수익성을 악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마트TV가 활성화하기 전에 선제적 조처를 취해 초고속인터넷에서는 이동통신과 같은 ‘실수’를 피하고 소비자에게 추가적 데이터 수요에 대해 과금할 명분을 쌓자는 전략이 깔려 있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782만 명으로 시장의 43%를 점유한 1위 사업자 KT는 오래전부터 인터넷 종량제를 추진해왔으나 소비자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스마트TV로 인해 더욱 늘어날 데이터를 고려하면 초고속인터넷 통신망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불가피하나 현재 정액제를 손보지 않고서는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느긋한 형편이다. 국제적으로 스마트폰이나 TV 제조사가 통신망 구축비를 분담한 사례가 없고, 데이터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키는 애플 아이폰이나 구글 유튜브 등에도 KT가 똑같은 과금 요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한다. 삼성전자의 이경식 상무는 “네트워크 이용 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 어긋나고, 글로벌 동향에도 역행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전세계에 스마트TV를 팔아야 하는 삼성전자로서는 특정 국가에서 통신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에 굴복해 ‘선례’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문제의 배경엔 국내 특수성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25개국은 유선인터넷 요금이 종량제를 기반으로 한다. 요금에 따라 일정한 데이터양을 제공하고 추가 사용에 과금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스마트TV 등 늘어나는 데이터 트래픽을 풀 수 있는 요금 구조다.

KT로 인한 해프닝은 방통위의 중재로 일단 봉합됐다. 방통위는 트래픽 증가와 통신망 투자 비용 분담 등과 관련해 ‘망 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의 논의를 앞당기겠다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KT로서는 기업 이미지에는 손상을 입었지만, 망 중립성 무대에서 통신사의 목소리를 내어 이슈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KT의 한 임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본격화할 망 중립성 논의에서 통신사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한 것을 내부에서는 성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망 중립성 원칙 준수를 강조하는 포털 업계에서는 통신사와 TV 제조업체가 타협책으로 스마트TV 사용자를 위한 ‘프리미엄 서비스 요금제’를 출시할 것으로 본다.

KT가 무리한 통신망 차단에 나선 것을 사용자와 제조업체보다는 주식투자자를 향한 ‘액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화증권 박종수 애널리스트는 “무선에서 스마트폰으로 통신사 투자 부담이 커졌는데, 스마트TV로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는 초고속인터넷에서 실효를 떠나서 이런 액션을 보여주면 투자자에겐 긍정적 효과를 준다”고 말했다. KT가 지난해 통신 부문의 악화된 영업 실적으로 투자 심리가 떨어져, 주가가 하락해 52주 최저치를 오가는 상황에서 네트워크(통신망)의 자산 가치를 활용하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KT는 ‘망 차단’을 하겠다고 밝힌 보도자료에서 ‘무임승차’를 언급하며 “네트워크의 가치가 인정돼야 한다”고 ‘동기’를 밝혔다.

불씨는 그대로 살려두고…

단순한 해프닝 속에 업계의 복잡한 셈법이 들어 있지만, 실제로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할 망 중립성의 원칙은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 이것은 앞으로 또다시 불거질 스마트 기기 시대의 과제를 안겨주었다. 방통위가 지난 1월1일부터 시행하는 ‘망 중립성과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의한 가이드라인’은 원론 수준이긴 하나 해법의 방향을 담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5개 기본원칙, 즉 △이용자의 권리 △인터넷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 △합법적 콘텐츠 △기기의 차별과 차단 금지 △합법적 트래픽 관리 허용으로 돼 있다.

이번 KT의 통신망 차단 해프닝은 이용자를 볼모로 삼아 협상의 지렛대로 썼다는 점, 객관적인 데이터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합법적 콘텐츠와 기기를 차별할 수 없다는 원칙도 공개적으로 무시됐다.

글 /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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