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죄수딜레마 게임 양상도
제살깎는 경쟁에 너도나도 골병
보조금 선발업체 엄격한 처벌과
통신사 중심 단말기 유통 탈피 등
해법 있어도 ‘주도권 잃을라’ 회피
제살깎는 경쟁에 너도나도 골병
보조금 선발업체 엄격한 처벌과
통신사 중심 단말기 유통 탈피 등
해법 있어도 ‘주도권 잃을라’ 회피
지난 8~9일 전국 이동통신사 대리점·판매점에선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통신사들의 보조금 전쟁이 벌어지면서 최신형 스마트폰인 삼성전자의 갤럭시S3도 10만원 남짓이면 구매할 수 있었다. 전산망이 다운될 정도로 많은 번호이동이 이뤄지자, 방송통신위원회는 13일 ‘시장 조사’라는 칼을 빼들었다. 그런데 통신사들은 되레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주가도 올랐다. 불법(불공정)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는데, 회사는 물론 투자자까지 반색하고 나서는 황당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 각종 게임이론 난무하는 이동통신시장 이런 상식 밖의 상황 진행은 이동통신 시장이 그만큼 상식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 이동통신 시장은 상식보다는 각종 ‘게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는 5300만명으로, 전체 인구 5000만명보다 많다. 시장이 포화돼, 통신사들이 아무리 열심히 가입자를 끌어모아도 서로 뺐고 빼앗길 뿐이다. 전체 규모는 그대로여서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보조금 과당 경쟁이 한창이던 지난 10일 한 이통사 관계자는 “현재 치킨 게임 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손해지만 너도 손해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라는 통신사들의 태도는, ‘네가 포기하라’며 외나무다리에서 마주보고 돌진하는 치킨게임과도 같다는 지적이었다. 도박판에서 좋지 않은 패를 가지고 되레 강하게 베팅하는 블러핑(공갈)게임과도 유사하다.
보조금 경쟁이 제살깎기란 것을 알면서도 이통사들이 발을 빼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여기 2명의 공범이 있다. 둘 다 침묵하면 풀려나고, 둘 다 자백하면 5년 형을 살게 된다. 그런데 한쪽이 침묵하고 한쪽은 자백하면, 침묵한 쪽은 10년 형을, 자백한 쪽은 석방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부분은 서로 자백하고 5년 형을 선택한다. 서로 입을 닫는 게 최선이지만, 혼자만 그랬다가 혼자만 10년형을 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통신사들의 행동도 이와 비슷하다. 협력할 경우(공정경쟁) 서로에게 가장 이익이지만, 개인적인 욕심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으로 서로 손해 보는 상황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 단기적 해법, 방통위의 제대로 된 규제 상식적인 시장원리가 작동하도록 통신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업체나 방통위 모두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우선은 방통위가 규제다운 규제를 하면 된다. 현재 대당 27만원 이상의 보조금은 금지되는데, 3번 단속되면 최대 3개월 동안 신규 가입자 모집을 금지당하게 된다. 이통 3사는 2010년과 2011년 한차례씩 적발된 바 있어, 이번엔 신규 이용자 모집을 금지당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전혀 긴장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차피 거의 비슷한 처분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이용자 불편 때문에) 한꺼번에 신규 가입자 모집 금지 처분이 내려지기는 어렵고, 셋이서 한 열흘씩 번갈아가면서 모집을 금지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리 강한 처벌이 내려지더라도 경쟁업체와 함께 받는 처분은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수십조원 매출을 올리는 상황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과징금도 제재의 의미가 크지 않다.
이럴 경우 답은 보조금 전쟁을 먼저 일으킨 업체를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뒤따라간 업체는 책임을 대폭 경감해주고, 앞으로는 보조금 전쟁에 뒤따라가지 말도록 공지하면 된다. 하루 이틀 잠깐 가입자를 늘리려다가 혼자 몇달 동안 신규 가입자 모집을 금지당하는 상황이 되면, 보조금 전쟁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 장기적 해법, 단말기 자급제의 일반화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은 통신사와 단말기 시장의 분리다. 현재 문제의 핵심은 통신사들이 요금과 서비스가 아닌 보조금으로 소비자를 현혹(차별)하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일반 가전제품처럼 유통되면, 단말기 출고가의 거품이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자들은 과소비를 줄이고, 매출의 20%를 웃도는 마케팅비가 줄어 요금이 인하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통신사들이 요금과 서비스로만 경쟁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한 이통사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나 가능할 방안”이라고 일축했다. 시장주도권을 잃을 수 있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소비 감소를 우려한 제조사도 부정적이다. 방통위 한 관계자도 “단말기 유통에서 손을 떼라고 하면 이통사들이 ‘영업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헌법소원부터 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동통신 시장의 각 주체들이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한 시장은 후진적인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통신사들은 속으로 골병을 앓고, 소비자들은 가입 시기·장소에 따라 차별을 당해야 하며, 방통위는 규제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나 추석 뒤 애플의 아이폰5,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2, 엘지전자의 옵티머스G, 팬택의 베가R3 등이 출시되면 ‘스마트폰 대전’은 불가피해진다. 보조금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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