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제재 한달만에 보조금 ‘들썩’
방통위·미래부 작심한듯 칼빼들고
통신3사도 서비스경쟁 전향적 태도
유통시장 과포화 탓 해결 쉽지않아
방통위·미래부 작심한듯 칼빼들고
통신3사도 서비스경쟁 전향적 태도
유통시장 과포화 탓 해결 쉽지않아
‘과잉 보조금’으로 상징되는 혼탁한 이동통신 시장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신사들이 기존 고객 우대책을 내놓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강도 대책’을 공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왜곡·과포화된 유통시장 문제를 그대로 둔 채로는 근본적 변화가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8일부터 이동통신 3사의 이동전화 가입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시장조사에 착수했다”고 9일 밝혔다. 지난 3월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동통신 3사의 이동전화 단말기 보조금 과다 지급이 사회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는 발언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진 뒤 한달 동안 시장이 잠잠했지만, 4월15일께부터 시장이 다시 혼탁해지고 있다는 게 방통위 판단이다. 주말을 낀 4월22일과 5월6일에는 번호이동 건수가 각각 4만6000건과 4만2000건을 기록해, 시장과열 판단 기준인 2만4000건을 훌쩍 뛰어넘었다.
방통위는 4월22일~5월7일 사이 가입분을 집중 조사하되, 이통 3사가 교대로 신규가입 모집 금지 처분을 받은 1월8일~3월13일 사이 위반 행위도 살펴볼 계획이다. 이경재 신임 방통위원장은 지난 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과거에 보조금 과열 경쟁 사업자를 똑같이 처벌해 효과가 없었다. 이번에는 본보기로 과열을 불러일으킨 사업자 1곳을 선정해서 과징금을 매우 많이 물리거나 영업정지 조치를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취임 뒤 첫 행보인 만큼, 7월께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이통사 처벌 수위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미래창조과학부도 8일 오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시장구조 개선을 위한 근본적 대책들을 내놨다. 여기서는 출고가와 보조금 수준 공개 등과 함께, 대리점과 판매점의 위법 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단말기 제조사도 조사·제재 대상으로 포함하는 등 법률 개정이 필요한 강도높은 방안들이 논의됐다.
정부뿐 아니라, 이통 3사도 올해 초부터 ‘착한 기변’(착한 기기변경) 제도를 도입하는 등 보조금 경쟁을 지양하자는 분위기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 앞다퉈 망·내외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는 등 서비스·요금 경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렇듯 업체와 정부 사이에 ‘자성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과잉 보조금이 한껏 키워놓은 유통시장 때문이다. 전국 이동통신사 대리점과 판매점은 4만5000곳 가량으로, 주유소(1만3000개), 편의점(2만4000개) 숫자보다도 많다. 이통사와 제조사들은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약정보조금 이외에 정책장려금과 모집수수료, 관리수수료, 제조사 장려금 등 각종 보조금을 판매점과 소매점에 지급해왔다. 한해 6조~8조원 수준인 이통 3사 마케팅비용의 상당 부분이 이 생태계 유지에 사용돼 왔다. 이들 가운데는 이통사의 마케팅 정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비대화한 곳도 많다.
보조금 수준이나 기기값이 낮아지고 이동전화 교체주기가 길어져 시민들의 통신요금 지출이 줄면, 상당수는 영세상인인 이들 대리점·판매점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청와대 ‘엄포’ 뒤, 경기 일산에서 2년째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이동전화 판매 대수나 마진이 1년 전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생계형 창업자들인데, 심각한 적자를 겪다 보니 폐업 또는 도산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일부 판매 조직은 정리가 되겠지만, 상당수는 어떻게 해서든 가입자를 모아야 유지가 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과잉 보조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가 비정상적인 통신시장을 오랫동안 방치해온 결과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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