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 수리중 7000곡 삭제
“타인 아이튠스 사용탓” 배상 거부
‘다른 책임자와 통화’ 요청도 묵살
“아이팟 1대당 여러 기기 동기화
애플이 허용한 방식…배상해야”
“타인 아이튠스 사용탓” 배상 거부
‘다른 책임자와 통화’ 요청도 묵살
“아이팟 1대당 여러 기기 동기화
애플이 허용한 방식…배상해야”
디지털기기 제조사가 애프터서비스(A/S)를 해주는 과정에서 실수로 기기에 저장돼 있던 디지털콘텐츠들을 삭제했다. 이 콘텐츠들은 회사가 공식 지정한 방식으로 다운받은 게 아니었다. 콘텐츠 삭제에 회사 쪽은 책임을 져야 할까?
지난해 말 아쿠아로빅(수중 에어로빅) 강사인 김아무개(35)씨는 사용중인 음악·동영상 재생기기 ‘아이팟’고장 관련 문의를 위해 애플 서비스센터(1544-2662)에 전화를 걸었다. 기술지원팀 상담원은 원격조정으로 아이팟을 살피더니 ‘컴퓨터와 연결해 동기화를 해보자’고 말했다.
김씨는 “동기화를 하면 음악이 지워지는 것 아니냐. 중요한 것들이라 지워지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상담원은 ‘음악은 다시 찾을 수 있다’며 동기화를 했고, 결국 아이팟 안에 저장돼 있던 7000여곡이 삭제됐다. 상담원의 상급자인 김아무개 대리는 “죄송하지만 음악들은 다시 다운받아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을 통한 음원 구매 행태가 널리 퍼져 있는 실태를 감안하면 김씨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다운받아준 업계 지인은 현재 외국에 머물고 있어 다시 다운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리 얘기했는데도 동기화를 시켜 곡들을 삭제했다”며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김 대리는 “7만원 상당의 이어폰 또는 스피커독(아이폰 전용 스피커)을 주겠으니 선택해라. 그 이상은 없다”라며 선을 그었다.
애플의 이런 태도는, 김씨가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을 통해 음악을 다운받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팟은 컴퓨터의 아이튠즈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고, 다운받은 뒤에도 해당 곡들은 아이튠즈에 남는다. 결국, 실제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다운받았더라면 재다운 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김씨는 다른 이의 아이튠즈에서 곡들을 다운받아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씨는 “다른 사람의 아이튠즈를 통해 곡을 내려받은 게 불법인지도 모르겠고, 설령 불법이더라도 음악 삭제에 따른 애플의 민사 책임과는 별개인 형사사건”이라고 말했다. 불법 노점상이더라도 기물을 파손했다면 배상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한국 IT산업의 멸망> 저자인 김인성 한양대 교수는 “직접 만들거나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게 아니라면 (배상책임이 없다는) 애플 쪽 주장이 맞는 것 같다. 다만 (다른 컴퓨터에서 다운받았다는) 사용자 환경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부분은 (회사 쪽에) 일부 책임이 있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변호사)의 설명은 약간 달랐다. “애플은 한 아이팟 당 5대 이내의 컴퓨터와 동기화하고 각각의 아이튠즈를 통해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도록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애플이 허용한 방식으로 아이팟에 다운받았던 곡들이 삭제된 만큼 회사 쪽에 배상 책임이 있다.” ‘자기 컴퓨터에서 다운받았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애플 쪽 논리에 대해서도 “내가 다른 사람 컴퓨터에 아이팟을 연결해 곡들을 다운받는 것과, 그 컴퓨터 주인이 내 아이팟을 가져가 다운받아 주는 것 사이에는 법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용자 사정에 따라 아이튠즈에 있는 곡을 삭제할 수 있는데, ‘원래대로라면 재다운 받으면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자료 지워놓고 ‘왜 백업 받아놓지 않았느냐?’라며 되레 이용자를 혼내는 것과 같다.”
피해자 김씨 쪽은 “애플 쪽 태도에 더 화가 났다. ‘다른 책임자를 바꿔달라’, ‘애초 곡을 삭제한 상담원과 얘기하고 싶다’, ‘처음 신고했을 때 녹음된 통화 내용을 달라’는 등의 요청을 했지만, 회사 쪽에서 모조리 거부했다. ‘회사 쪽에 내용증명으로 보내겠다’며 주소를 요구했더니, 김 대리는 싱가포르 주소를 불러주더라. 한국 업체였다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애플은 혁신의 상징인 반면, 애프터서비스를 놓고는 숱한 논란을 뿌리고 있는 기업이다. 구매 2주 뒤부터는 고장난 제품을 무조건 리퍼폰(공장에서 재생된 제품)으로 바꿔줘 ‘거의 새 제품을 중고폰으로 바꿔준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을 산 게 대표적이다. 애플은 이 규정을 지난해 4월에야 개정했는데, 이런 사실을 한 달 넘게 알리지 않아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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