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정책 공개·차별지급 금지’
국회심의 앞두고 제조사 큰 반발
“과도한 규제” 경제지 보도 잇따라
“영업비밀 공개로 왜곡해 공세”
정부관계자 “배후에 삼성 의심”
발의 때와 달리 법안통과 ‘안개’
국회심의 앞두고 제조사 큰 반발
“과도한 규제” 경제지 보도 잇따라
“영업비밀 공개로 왜곡해 공세”
정부관계자 “배후에 삼성 의심”
발의 때와 달리 법안통과 ‘안개’
이동통신 시장에서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업체가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보조금 정책 공개와 차별 지급을 금지하는 내용의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말기 유통법) 국회 심의를 앞두고 제조사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침해한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인데, 당국에서는 특정기업이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다’며 불쾌해하고 있다.
지난 6월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해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정기국회 때 통과를 추진중인 ‘단말기 유통법’은 보조금을 투명하고 공평하게 지급하도록 하는 게 뼈대다. 이동통신사는 이동전화 보조금을 누리집에 공개하고, 대리점과 판매점에서는 이를 매장에 게시해야 한다. 또 신규가입에 비해 타사 가입 고객이 옮겨올 경우(번호이동) 보조금을 더 지급해온 관행도 금지된다. 단말기 구매 보조금을 받지 않을 경우엔 그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끊임없이 발생해온 보조금 논란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단말기 유통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래부 홍진배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우리나라에서는 휴대전화 가격이 구입 장소나 시기에 따라 몇배씩 차이가 나는데, 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극심한 이용자 차별이다. 또 실제 단말기 가격의 불투명성은 고가 단말기의 잦은 교체와 고가 요금제 연계 가입을 통한 ‘통신 과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단말기 교체 주기 약 16개월로 세계 1위’, ‘고액 정액요금제 가입자 음성·데이터 기본제공량 50~60%만 사용’ 등 과도한 통신비용 지출 관련 뉴스는 새삼스럽지도 않을 정도다.
단말기 유통법안이 추진되자, 보조금 경쟁의 ‘주범’ 격인 이동통신사들은 ‘과도한 규제’라며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현재는 법안 통과를 지지하고 있다. ‘제 살 깎아먹기 식 보조금 경쟁’에 지친 끝에 “우리 좀 확실히 규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모양새다.
보조금 문제의 ‘공범’ 격인 제조업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단말기 제조업체도 조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가장 반대한다. 익명을 요청한 제조사 한 관계자는 “조사를 할 뿐 영업비밀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나갈 수 있고, 이를 해외 통신사업자가 알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보조금 공개와 차별금지는 보조금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시기와 장소에 따른 할인 판매 등은 대형마트 등에서도 흔히 이뤄지는 마케팅 기법인데, 왜 이동통신 시장에서만 규제하느냐?’는 반발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최근 2~3주 사이 경제지·전문지 등이 이런 주장을 담은 보도를 잇달아 내놓으며, 단말기 유통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됐다.
이에 미래부와 방통위는 설명자료를 내거나 기자 설명회를 열어 제조사 쪽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법안에 따른 자료제출 대상은 단말기 원가 자료가 아니라 보조금 지급과 관련된 최소한의 자료일뿐더러 공개 목적이 아닌데, 제조사들이 영업비밀 공개라며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정부는 ‘단말기 유통법 흔들기’의 배후로 삼성을 지목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왜 갑자기 (단말기 유통법을 비난하는) 보도들이 쏟아지는지 알아봤더니, 다들 삼성 얘기를 하더라. 삼성 힘이 대단한 것 같긴 하다”며 불쾌해했다. 복수의 이통사 관계자들도 “대놓고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다니, 삼성 아니면 (다른 기업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단말기 유통법을 둘러싼 제조사 진영과 정부·이통사 쪽의 힘겨루기는, 최종적으로는 국회에서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 법안 발의 당시만 해도 여야 모두 소모적인 보조금 논란을 종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제조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현재는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편의점이나 피시(PC)방보다도 흔한 이동전화 판매점(2만~3만곳 추정) 업주들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한해 6조~8조원가량인 이통사 마케팅비용을 대부분 가져가는 비대해진 유통시장을 정상화시켜야 하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소규모 자영업자다.
미래부 관계자는 “단말기 유통법이 시행되면 보조금을 미끼로 한 고가 요금제 강제 행위가 사라질 것이다. 또 기존 단말기나 중저가 단말기를 이용하면서 이통사 서비스만 가입하는 경우에도 추가적인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어, 단말기 구입 비용과 통신요금 모두를 줄일 수 있다. 사업자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의 입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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