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 상임위 충돌 여파
‘단말기 유통법’ 국회 처리 무산
‘보조금 대란’ 시장 혼란만 남겨
영업 정지 등 통신사 제재 나섰지만
이동통신유통협회 ‘결사 반대’ 계획
‘퇴로’ 마련않고 법 통과에만 의존
비전 없는 정책 추진 비판 일어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도 도마에
‘단말기 유통법’ 국회 처리 무산
‘보조금 대란’ 시장 혼란만 남겨
영업 정지 등 통신사 제재 나섰지만
이동통신유통협회 ‘결사 반대’ 계획
‘퇴로’ 마련않고 법 통과에만 의존
비전 없는 정책 추진 비판 일어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도 도마에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말기 유통법)안의 2월 임시국회 통과가 무산되면서 통신정책을 총괄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삼중고에 처하게 됐다. 법안이 좌초된데다 최근 시장 과열에 따른 책임론, 통신사 제재와 관련한 유통업계 반발 등 풀어야 할 숙제는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부는 국회와 삼성을 탓하는 분위기지만, ‘퇴로’와 ‘비전’ 없는 정책 추진으로 스스로 입지를 줄인 당국의 미숙함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27~28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충돌이 빚어지면서 단말기 유통법 처리가 무산됐다. 지난해 5월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단말기 유통법은 이동통신사들의 보조금 정책 공시, 부당한 이용자 차별 금지, 보조금 대신 같은 수준의 요금할인 선택권 보장, 제조사 장려금 조사 등을 담고 있다. 미래부는 이동통신시장 정상화에 필수라며 지난해 6월 임시국회 이후 국회가 열릴 때마다 단말기 유통법 통과에 전력투구해왔다.
하지만 여야 대립이 치열한 상임위 특성에 삼성 쪽 반대까지 겹치며 법안 통과는 번번이 무산됐다. 미래부는 “정쟁과 무관한 법안은 통과시킨 뒤 싸우면 안 되나”, “(일부) 언론과 보수(시민)단체까지 법안에 반대하게 하다니 삼성 힘이 세긴 하더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연말께 제조사 조사 범위 축소와 규제 일몰제(3년 시한 시행) 등 삼성과의 타협안이 마련되면서 올해 2월 임시국회 통과가 유력해졌지만,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이번에도 법안은 상임위 단계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4월과 6월 임시국회가 있다지만, 지방선거 등 국회 일정을 고려하면 연내 시행도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말기 유통법이라는 ‘열매’는 따지도 못했는데, 열매를 따려는 과정에서 불거진 부작용은 심각하다. 단말기 유통법 시행 이전에 가입자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겠다며 통신사들이 보조금을 풀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월과 2월 번호이동(MNP·알뜰폰 제외) 건수는 각각 106만건과 115만건에 달했다. 2월 하루 평균 번호이동 건수는 당국의 과열 판단 기준(2만4000건)을 훌쩍 넘어 4만1000여건을 기록했고, 인터넷에서는 ‘2·11 대란’, ‘2·26 대란’, ‘2·28 대란’ 등 신조어가 유행했다.
이달 중순께 내려질 미래부의 통신사 제재도 분란을 부르고 있다. 지난해 12월27일 ‘보조금 차별 지급을 금지하라’는 방통위의 시정명령을 어긴 것과 관련해 영업정지 등 통신 3사에 대한 처벌이 내려질 예정인데, 유통 쪽 소상공인들이 반발하고 나설 전망이다. 이동전화 판매점 운영 업체들의 모임인 이동통신유통협회는 4일 오후 영업정지 반대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생계형인 소상공인 몰락을 부른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국회 비협조(법안통과 실패), 여론 비판(시장 과열), 유통망 반발(영업정지 반대) 등 삼면이 적이고, 우군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형국인 셈이다.
이런 상황은 당국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단말기 유통법과 관련해서는 ‘퇴로’를 마련해놓지 않았다. 단말기 유통법만이 시장 정상화를 위한 유일하고 완전한 해결책인 양 접근한 결과 법안 통과가 좌절되니 ‘할 일이 없어진’ 상황이 됐다. 또 ‘보조금을 하향 평균화해 통신사만 좋은 일 시킨다’는 공격에 ‘지금 시장은 비정상이다. 이용자 차별을 줄이기 위해 법안이 필요하다’고만 반박한 전략적 실패도 문제가 된다. 소비자에게는 단말기 유통법이 요금 인하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가 핵심인데, 이 부분 설명이 모자랐다는 얘기다. 결국 요금 인하와 연결되는 단말기 유통법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도 끌어내지 못했고, 이는 법안 좌초로 이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과 허술한 태도로 규제당국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았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기업 규모에 턱없이 못미치는 과징금 규모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여론의 비판을 받고서야 신규 가입자 모집 금지(영업정지)를 내세우며 호언장담했지만, 지난해 초 통신 3사 릴레이 영업정지는 보조금 전쟁의 판만 더 키웠을 뿐이다. 미래부 한 관료는 “자주 적용하지는 않지만 한번 걸리면 큰코다친다는 게 규제의 기본 원리인데,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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