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프로그램, ‘튜링 테스트’ 사상 첫 통과
심사위원 중 33% 대화 나눈 뒤 ‘사람’으로 착각
심사위원 중 33% 대화 나눈 뒤 ‘사람’으로 착각
“안녕. 내 이름은 유진이야. 햄버거와 사탕을 좋아해. 아빠는 산부인과 의사시고….”
유진 구스트만은 자신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사는 13살 소년이라고 소개했다. 7일 유진과 온라인 채팅을 한 심사위원의 3분의 1이 그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슈퍼컴퓨터로 돌아가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그의 정체였다.
이 순간, 과학계의 숙원으로 꼽혔던 ‘튜링 테스트’의 관문이 마침내 뚫렸다. ‘인공지능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전산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이 1950년 테스트를 제안한 지 64년 만이다. 튜링은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의 사고 능력’을 판별할 수 있다고 봤다. 사람들이 컴퓨터와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가 컴퓨터인지 진짜 인간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생각하는 존재’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는 심사위원의 30% 이상이 ‘인간’끼리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하면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유진은 이날 5분간의 텍스트 대화를 통해 심사위원(25명 참가)의 33%에게 ‘진짜 인간’이라는 확신을 주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의 여러 시도 가운데선 29%에 도달한 게 최고였다.
이날 테스트는 영국 레딩대학 주최로 런던의 영국왕립학회에서 진행됐다. 참가한 5개 프로그램 중에서 유진이 유일하게 테스트를 통과했다. 테스트를 주관한 케빈 워릭 코번트리대학 부총장은 레딩대학 누리집(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진정한 튜링 테스트는 미리 질문이나 화제를 정해놓지 않아야 한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첫 사례가 7일 나왔다고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는 “컴퓨터가 사람인 양 속이는 게 가능해진 현실은 (새로운) 사이버범죄의 위험을 경고한다”며 “튜링 테스트는 그런 위협과 싸우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유진은 러시아의 프로그래머 블라디미르 베셀로프 등이 개발해, 200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첫 버전이 나왔다. 유진이 테스트를 통과한 데는 캐릭터의 나이를 13살로 설정한 것도 한몫했다. 베셀로프는 “유진의 나이 때문에 사람들은 유진이 뭔가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믿음을 주는 캐릭터를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말했다.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보다는, 보통사람처럼 보이게끔 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영화로 치면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공지능 ‘핼’보다는 최근 개봉한 <그녀>의 ‘사만다’에 가깝다. 유진 웹사이트(www.princetonai.com/bot/bot.jsp)에 접속하면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눠볼 수 있다.
이번 행사는 앨런 튜링 사망 60주기를 기념해 열렸다. 튜링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의 승리에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강제로 호르몬 주사를 맞는 등 박해를 받다가,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인공지능 프로그램 ‘유진’ 웹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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