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보호 예산 편성 업체 비율
2012년 46%서 2013년 10%로 급감
아이핀 인증 도용 사례 항의하자
“해지했으면 확인못해” 안이한 대응
국민 94% “보호 중요” 인식과 딴판
기업들 근본적 인식 전환 필요
2012년 46%서 2013년 10%로 급감
아이핀 인증 도용 사례 항의하자
“해지했으면 확인못해” 안이한 대응
국민 94% “보호 중요” 인식과 딴판
기업들 근본적 인식 전환 필요
직장인 안아무개씨는 지난 14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전자우편 계정에 접속했더니 자신이 써오던 ㅋ○○ 아이핀 회사로부터 9일부터 이날까지 자신이 하지도 않은 21건의 인증이 있었다는 안내 메일이 무더기로 왔기 때문이다. 아이핀이란 인터넷에서 쓰이는 개인 식별번호다. 불안했던 안씨는 먼저 아이핀을 해지하고 ㅋ사에 어떤 곳에 쓰였는지 문의했다. 하지만 “해지했으면 확인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다음날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어 강하게 항의하자, 회사는 그제야 사용 내역을 보내왔다. 안씨는 “사용자가 도용 당했다는데 회사는 아무렇지 않게 ‘폐기했으면 됐다’는 반응을 보이는 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직장맘’ 전아무개씨는 지금도 아이의 정보가 어디선가 돌아다니고 있으리라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발단은 2012년 4월 아이의 초등학교에서 보낸 공문을 받고 만든 ‘어린이 체력증진 바우처 카드’였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던 제도로, 위탁업체인 ㄱ카드에 아이 이름으로 가입하면 넣어주는 지원금을 태권도장 학원비 등에 쓸 수 있는 제도였다. 그해 6월 사업이 종료되면서 당연히 아이의 정보도 폐기된 줄 알았던 전씨는 지난해 초 카드사가 여전히 아이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다가 해킹 당해 정보가 유출된 것을 알고 놀랐다. 전씨는 “카드사, 복지부, 학교 어느 곳에서도 아이 개인정보 처리나 폐기 방법에 대한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2차 아이티(IT) 혁명’이라고 할 만큼 사회 전반의 정보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용자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취급하는 기업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의식은 과거에 머무르거나 심지어 후퇴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통신사, 카드사 대량 정보유출 등 대형 해킹사건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국민의 개인정보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지난해 5월 벌인 의식조사를 보면 ‘매우 중요하다’(43.8%), ‘중요한 편이다’(50.1%) 등으로 94%에 가까운 이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 노력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정보보호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개인정보를 다루는 조사 대상 업체 가운데 2013년 한해 동안 정보보호 관련 예산을 편성한 사업체는 10.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2012년) 정보보호 예산을 지출했다는 사업체가 45.9%에 달한 것에 비하면 크게 악화된 수치다. 2011년에는 26.7%였다.
안씨와 전씨의 사례에서 보듯 이는 고객 정보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특히 주민번호 대용으로 떠오른 아이핀의 경우, 지난 3월 공공아이핀 75만건이 유출되면서 정부가 부랴부랴 보완책 마련에도 나섰지만 민간업체 구멍에는 속수무책인 셈이다. 아이핀은 공공과 민간이 서로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한 곳에서 만들면 다른 곳에서도 쓸 수 있다. 특히 한번 정해지면 평생 바꾸기 힘든 주민번호가 널리 쓰이고 있는 국내의 경우 기업의 정보보호에 대한 해이한 접근은 특히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주민번호는 다목적으로 장기간 쓰이기 때문에 유출된 아이의 정보가 몇십년 뒤에 어떤 해가 되어 돌아올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개인정보 정책을 맡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박노익 이용자정책국장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빠른 정보화를 목표로 하면서 기업의 사용자 보호 정책이 허술하고, 새삼 예산을 투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핵심은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당사자가 경제적 피해를 입었을 때나 땜질을 하는 지금까지 방식으론 앞으로 더 큰 피해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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