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손화철 한동대 교수(과학기술철학)
대기업 사무실에서 직원 두 명이 한 대의 컴퓨터를, 그것도 필요할 때 사용하고, 특별한 사람만 쓰던 휴대전화가 벽돌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20년이 지난 오늘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다. 원하건 원치 않건 우리는 이제 디지털화된 환경에서 사실상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기술이란 발달할수록 스스로를 감추는 경향이 있어서 점점 더 눈에 띄지 않게 되고, 자연스러운 환경의 일부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나 어느새 삶의 필수조건이 되어 버린 디지털 기술이 가지는 함의는 엄청나다. 정보를 얻고 저장하고 나누는 방식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사회구조, 지식과 정치의 의미와 대상, 가치가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억력에만 의존해야 했던 구술시대에는 생각과 말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삶은 늘 비슷했다. 체계적인 사고와 학문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진보를 이루게 된 것은 문자가 발명된 이후다. 그 진보의 끝에서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삶에 또 다른 질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얼마 전 경찰이 교통관리를 위해 설치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세월호 추모 집회를 통제하는 데 사용해서 논란을 빚은 것은 디지털 환경의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적·사적 목적을 위해 설치된 수많은 시시티브이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면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모으고 있지만 이들의 사용 주체와 방법들의 기준이 정교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다.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퍼져 있는 수많은 디지털 기기들의 사용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 기준을 해석하는 누군가가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빅데이터 기술은 그 적용의 한계를 고민해야 할 신기술이다.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해서 대중의 기호와 행동양식을 파악하여 마케팅과 정책 결정에 활용한다는 계획은 분분하지만, 어떤 데이터를 누구의 동의로 그 분석에 포함시킬 것인지, 그렇게 해서 얻어진 정보를 누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그에 더해 나의 모든 무심한 활동과 알게 모르게 저장된 데이터들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쌓여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야기는 더욱 서늘해진다. 강력한 검색엔진의 시대에는 나 자신도 잊어버린 나의 과거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가능성과 변화들이 공기나 호흡능력처럼 미리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디지털 환경은 사람이 만들었을 뿐 아니라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제어·관리하는 인공적·우연적 환경이다. 그 제어와 관리의 과정에서 앞으로 어떤 조건들을 추가하고 뺄 것인지에 대한 기술적·정책적·경제적 결정이 지속적으로 내려지고, 그에 따라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흐름이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도 점점 복잡해져 가는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디지털 기술의 사용자, 개발자, 기업, 정부가 모두 좀 더 근본적인 고민과 담론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과학기술 발전의 과정을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전유물로 보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그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먼저 미래 사회의 모습이 어떠할 것인지가 아니라 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인공적 환경을 제어, 관리, 결정하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그 권력의 정당성을 물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영역에서 시민의 관심과 적극적인 자기표현이 없으면 우리는 자칫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억압과 통제, 비인간화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손화철 한동대 교수(과학기술철학)
손화철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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