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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위협’ 로봇은 기우?…‘재난 로봇 대회’가 남긴 것

등록 2015-06-15 20:25수정 2015-06-16 13:39

[사람과 디지털]
다르파 로봇 경진대회에서 24개 팀 가운데 1위를 차지한 우리나라 카이스트 팀의 로봇 ‘휴보’. 다르파로보틱스챌린지(DRC) 제공
다르파 로봇 경진대회에서 24개 팀 가운데 1위를 차지한 우리나라 카이스트 팀의 로봇 ‘휴보’. 다르파로보틱스챌린지(DRC) 제공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모나에서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 결선이 열렸다. 미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이 주최한 이 대회는 재난구조 상황을 상정한 과제를 얼마나 빠른 시간에 마치는지를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는 대회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등 로봇 기술의 최고 선진국 6개 나라 24개 팀이 참가했다. 총상금 350만달러(약 39억원)로, 로봇 기술의 최전선을 가늠할 수 있어 ‘로봇 올림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번엔 우리나라 ‘카이스트 팀’의 로봇 ‘휴보’가 당당히 1위를 차지해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한국의 우승 소식도 세계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지만,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끈 관련 뉴스는 따로 있었다. 로봇들의 우스꽝스러운 ‘안면 착지’(머리를 그대로 땅에 처박는 모습) 영상들이었다. 최고의 기술을 집적했다는 로봇들은 대회 사전 리허설에서 사정없이 땅에 고꾸라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자동차에서 내리다가 균형을 잃고 나뒹구는가 하면 문을 열려다 말고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기도 했다. ‘로봇들의 슬랩스틱 코미디’ 등의 제목을 단 인터넷 기사들이 인기리에 퍼졌다. <뉴욕 타임스>는 ‘진정해, 터미네이터는 한참 멀었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13년 12월 플로리다에서 열린 전 대회 이후) 1년 반 동안 로봇 기술의 진전은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재난 로봇 경진대회 출전 로봇은
인류 종말 우려한 인공지능과 거리
기계장치 불과한 로봇 쓰러질 때
보는 사람이 ‘감정이입’ 하는 현상
인간과 로봇의 관계 새 고찰 필요

최근 여러 석학들과 정보기술기업 대표들은 로봇의 부상에 대해 심각한 경고들을 내놓았다. 영국의 세계적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한 걱정이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모터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도 “인공지능은 우리의 가장 큰 현실적 위협”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세계 최고 로봇 경진대회에서 사방으로 나뒹구는 로봇들의 모습은 적지 않은 안도감을 안겼다. 석학들의 걱정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기우일까?

하지만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를 둘러싼 요소들을 짚어보면 다른 함의를 눈치챌 수 있다. 우선 이번 대회를 주최한 다르파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주도해 만든 조직이다.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자 충격에 빠진 미국이 내놓은 냉전의 유산인 셈이다. 다르파는 당장의 군사적 목적에 부합하는 무기 개발보다 미래 기술을 앞서 예측해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다르파의 연구는 인류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이 이 연구소의 프로젝트인 ‘아르파넷’의 개념에서 구축됐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르파가 기술을 국가 소유의 군사적 수단으로 다루는 조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를 멸망시킨 ‘스카이넷’이 실제로 탄생한다면 다르파는 그 모태로 가장 근접한 곳일 것이다.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모나에서 열린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문을 여는 과제를 수행하다가 뒤로 자빠지는 로봇의 모습. 인터넷 갈무리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모나에서 열린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문을 여는 과제를 수행하다가 뒤로 자빠지는 로봇의 모습. 인터넷 갈무리
그렇다고 기술 진전을 위한 모든 노력을 위험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경진대회는 여러 민간 연구자들의 개발 의욕을 높이고 동시에 대중의 로봇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기도 했다. 다르파의 프로그램 매니저인 길 프랫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로봇들을 우리가 얼마나 의인화하는지는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로봇은 알루미늄과 구리선, 소프트웨어가 섞인 물건일 뿐입니다. 우리는 노트북을 위해 응원하진 않죠. 그런데 로봇을 위해선 해요. 그리고 로봇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모두 안쓰러워합니다. ‘윽, 아프겠다’ 하고 말이죠.” 여기에 다른 함의가 있다. 인간은 주변 사물에 매우 쉽게 감정 이입을 하는 존재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고도 인간의 운명을 연상한다. 하물며 인간 형태로 만들어진 로봇에 대한 감정 이입과 의존은 월등하게 빠를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의 한 참전 군인이 자신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던 지뢰 탐지 로봇이 망가지자 전우를 고쳐달라며 제조사에 눈물로 호소한 사례도 있다.

문제는 이런 이입이 인간의 판단을 기계에 전가하는 의존으로 발전할 경향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디지털 문명 비평가 니컬러스 카는 <유리감옥>에서 비행기 사고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많은 사고에서 조종사가 비행기의 자동 운항을 과신하는 경향이 원인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번 경진대회 평가 요소 가운데에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조종자와 교신이 끊어졌을 때 로봇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여부가 포함되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게 맞을 것인가 같은 고도의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닥쳤을 때 우리는 로봇에게 어떻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해야 할 것인가.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기술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한다. 이번 대회의 계기는 2011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그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방사능 오염과 같은 인간이 접근하기 위험한 상황에 투입할 로봇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싼 전기 생산을 위한 원자력발전이란 기술이 가져온 재앙을 다른 기술의 개발로 해결하겠다는 방식인 셈이다. 사고 상황에서 로봇이 주는 편의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술에만 의존하는 한 방향의 접근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선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환경론자들의 주장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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