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감시’ 개념에서 나온 스티브 만의 발명품 ‘브라캠’. 여성의 가슴을 향한 남자의 시선을 역으로 되돌려 브라에서 이를 촬영해 본다는 콘셉트에서 나왔다. 출처: 위키코먼스(@Glogger)
브랜던 앤더슨은 2007년 경찰의 손에 최고의 친구였던 파트너를 잃었다. 그의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증 환자였지만 경찰 불심검문에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며 아들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었다. 앤더슨의 이야기는 20세기 초 미국 오클라호마주 흑인사회 구성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숱한 경험담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 털사(Tulsa)시에선 1921년 ‘검은 월스트리트’라고 불린, 당시 가장 부유했던 흑인 동네가 백인 폭도들에 의해 불타고 무너져내린 역사가 있다. 이런 오래된 비극의 역사에 대해 앤더슨은 그동안 동료 흑인들이 대응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을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앱을 만들었다.
‘와글어사’ ‘통신자료 조회 요청’
권력기관과 국회의원 활동 감시
기술구조 파악한 시민·개발자들
권력 역감시 도구로 ‘힘의 균형’ 도모
그가 개발해 계속 개선하고 있는 앱 ‘스왓’(SWAT)은 이렇게 탄생했다. 미국의 경찰특공대를 뜻하는 스왓과 같은 이 앱의 이름은 ‘책임과 투명성을 갖춘 안전’(Safety With Accountability & Transparency)의 줄임말이다. 핵심 기능은 ‘감시’다. 사용자들은 어디에서 어떤 경찰의 폭력이 발생했는지 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 앱에 올릴 수 있다. 그러면 관리자의 데이터베이스는 이를 수집해 전국적인 현황을 사용자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앤더슨은 지난 15일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경찰 활동을 지도 위에서 보여주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감시하고 공유하는 앱 ‘와글어사’의 실행 화면.
디지털 시대, 국가 권력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정보 수집 능력을 갖췄다. 정보통신과 모바일 기술의 발전은 정부가 중앙에서 손쉽게 국민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감시할 수 있는 인프라(기반시설)가 되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감시는 일방적이지 않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뿐 아니라 아래에서 위를 향한 감시도 동시에 이뤄진다. 정부의 경찰특공대(스왓)뿐 아니라 앤더슨의 앱 ‘스왓’이 함께 가능한 시대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컴퓨터 연구자이자 발명가인 스티브 만과 동료들은 2002년 이를 ‘위로의 감시’(sousveillance)라는 개념으로 정립했다. 감시를 뜻하는 단어 서베일런스(surveillance)에서 접두어 ‘서’(sur)는 프랑스어에서 ‘위에서 아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대되는 ‘아래에서 위’를 뜻하는 ‘수’(sous)를 붙여, 권력 하층부가 상층부를 감시한다는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위로의 감시’의 예로 강의평가 제도를 든다. 성적을 매기는 교수를 향해 학생들도 강의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서로를 관찰하는 사례다.
비슷한 개념으로 시놉티콘(synopticon)이 있다. 원형감옥을 뜻하는 파놉티콘(panopticon)은 근대사회의 핵심적 구조로 감시를 설명한다. 원형감옥 중앙에 내부가 보이지 않는 탑을 세우고 주변의 죄수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러면 늘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설령 중앙에서 감시하지 않는 경우라도 죄수들은 스스로 행동을 규율하게 된다. 이것이 효율적인 감시 개념 파놉티콘이다. 시놉티콘은 인터넷과 정보기술 등이 보이지 않던 중앙의 탑을 밝게 함으로써 감시당하던 사람들도 동시에 감시자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상호감시의 개념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역감시의 시도는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이번 총선을 즈음해 출시된 ‘와글어사’는 국회의원들을 감시하는 데 특화해 탄생한 앱이다. 이 앱은 ‘국민 모두가 암행어사가 되자’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무료 앱을 스마트폰에 깔면, 자신의 지역구를 설정하고 ‘어사’로 가입하게 된다. 그러면 그 지역구 국회의원의 공약 이행, 법안 발의 등의 활동 내역을 확인하고 의정 활동에서 보이는 문제점들을 고발해 공유할 수 있다. 자신의 활동이나 앱 안의 자료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하고, 활동에 따라 엽전을 받는 등의 게임 시스템도 도입해 흥미도를 높인 것도 대중의 참여를 촉진하는 요소들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민주노총이 함께 진행 중인 ‘통신자료 조회 결과 수집 운동’도 이런 대중 감시의 개념으로 풀 수 있다. 이들 단체는 시민들에게 자신의 통신자료를 국가정보원 등이 가져갔는지 이동통신사에 조회해서 결과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통신자료 조회는 현행법상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들 국가기관은 감시받는 사람의 눈에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조회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통신자료가 조회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기도 쉬워지면서 개인들이 이를 조회해 결과를 모으고 국가의 감시권력에 못지않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취합된 결과를 분석해 집단소송 등 행동에 나설 방침이다.
감시는 지배를 쉽게 할 뿐 아니라 피감시자의 정신을 갉아먹기도 한다. 앤더슨은 블로그에 경찰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과 두려움 탓에, 이후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털어놓은 바 있다. 역감시는 기울어진 힘의 관계에 균형을 잡아줄 뿐 아니라, 민주적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시스템을 개선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스티브 만은 “강의평가 제도를 도입하면 교수들도 강의에 신경을 쓰게 되어 교육 서비스가 개선된다”고 말했다. 의정 활동이 감시당할 때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한 일에 좀더 힘을 쏟게 된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