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3세 경영권 승계·자산증식에 이용
‘지분 저가인수-일감 몰아주기’ 공식
목적 달성하자 토사구팽 신세로
SK C&C 는 지주사 부문으로 ‘전락’
‘BW 사건’ 삼성SDS는 분할 예정
롯데정보통신도 SK·삼성 답습
“재벌 계열사 약화는 긍정적” 평가도
‘지분 저가인수-일감 몰아주기’ 공식
목적 달성하자 토사구팽 신세로
SK C&C 는 지주사 부문으로 ‘전락’
‘BW 사건’ 삼성SDS는 분할 예정
롯데정보통신도 SK·삼성 답습
“재벌 계열사 약화는 긍정적” 평가도
재벌 계열 정보기술(IT) 서비스(예전에는 시스템통합(SI)으로 불림) 업체 ‘빅3’ 가운데 에스케이씨앤씨(SK C&C)가 사라진 데 이어 삼성에스디에스(SDS)도 역사 속으로 모습을 감출 처지에 몰렸다. 정보기술과 물류가 합쳐진 개념의 ‘4자물류’ 서비스 플랫폼 ‘첼로’를 운영하는 부문과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정보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문으로 쪼개지는 것으로 결정났다. 분할 뒤 각각 어느 계열사로 보내질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삼성SDS’란 이름은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8월에는 에스케이씨앤씨가 지주회사인 ㈜에스케이에 흡수합병됐다. 지금은 에스케이의 씨앤씨부문으로 불린다. 최태원 그룹 회장과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 남매를 최대주주로 두고 지주회사인 에스케이를 거느리는 등 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다가 졸지에 지주회사 사업부문으로 전락했다. 빅3 가운데 엘지(LG) 계열의 엘지씨엔에스(C&S)만 유일하게 이름과 조직을 온전히 유지하는 꼴이 됐다.
삼성에스디에스와 에스케이씨앤씨의 공통점은 오너 3세들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강화에 필요한 ‘종잣돈’을 불려주는 구실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엘지씨엔에스는 이런 목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덕에 이름과 조직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이부진(호텔신라 사장)·이서현(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씨 남매는 삼성에스디에스를 통해 181억원을 2조718억원으로 불렸다. 수익률로 치면 1만1221%다. 방법은 간단했다. 1999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자녀들은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과 함께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 230억원어치를 주당 7150원에 인수했다. 계열사들이 실권하면서 물량 전체가 이들에게 배정됐다. 당시 삼성에스디에스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주당 5만5천원 선에 거래되고 있었다. 헐값 논란이 일었고, 국세청이 이를 변칙 증여로 간주해 443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삼성에스디에스의 사업도 일감 및 사업 기회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였다. 삼성네트웍스 등을 합병했고, 닷컴 붐 시절 이재용 부회장이 ‘e삼성’이란 이름으로 벌인 사업의 뒤처리도 떠안았다.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 3남매의 지배구조 강화 목적에 활용하려고 분할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 일가는 에스케이씨앤씨에 4억원을 묻어 4조7549억원으로 불렸다. 최 회장과 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갖고 있는 에스케이 지분 30.9%가 그것이다. 투자수익률이 무려 118만8625%다. 여기에도 지분 저가 인수→일감 몰아주기→총수 일가 자산 증식이라는 공식이 작동했다.
에스케이(옛 선경)그룹은 노태우 정부 때 선경텔레콤(곧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을 설립해 제2 이동전화 사업권을 따냈지만 ‘사돈 기업 특혜’ 논란으로 사업권을 반납했다. 이로써 대한텔레콤은 쭉정이가 됐고, 최 회장이 매제 김아무개씨와 함께 유공과 선경건설에 분산돼 있던 대한텔레콤 지분 전량(100만주)을 주당 400원(액면가 1만원)씩 총 4억원에 인수했다. 곧이어 김영삼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란 이름으로 케이티(KT·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 자회사로 있던 한국이동통신(현 에스케이텔레콤)을 매물로 내놨고, 에스케이그룹이 이를 인수했다. 한국이동통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소리를 들으며 빠르게 성장했는데, 대한텔레콤은 한국이동통신의 사업 계획 수립 용역 및 전산장비 인수 등을 높은 마진으로 대행하면서 성장했다.
대한텔레콤은 1998년 그룹 계열사들과 정보기술 서비스 아웃소싱 장기 계약을 맺은 에스케이컴퓨터통신을 합병하고 이름을 에스케이씨앤씨로 바꿨다. 이후부터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본격화했다. 계열사가 잘 키워놓은 중고차 사업을 헐값에 넘겨받고, 정보기술 서비스 인건비를 비싸게 책정했다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는 롯데그룹의 정보기술 서비스 계열사 롯데정보통신의 앞날도 앞의 사례들을 따를 가능성이 있다. 롯데정보통신 지분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주식위탁법인(로베스트AG)을 통해 지분 10.45%, 자녀들인 신동빈 회장이 6.82%,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3.99%,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3.51%를 갖고 있다. 회사 설립 때부터 소유한 이 지분도 결국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종잣돈 불리기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롯데정보통신은 상장을 추진중인데, 이를 통해 신 총괄회장 일가가 챙기는 이익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업계에서는 재벌 정보기술 서비스 업체들의 ‘기구한 팔자’가 회자되고 있다. 업체들 입장에서는 ‘승계와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종잣돈 불리기 목적을 이루고 나니 팽시키는구나’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으나 유방한테 제거당하는 처지가 된 한나라 장수 한신이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먹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사꾼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마땅히 팽당하는구나”(<사기> ‘회음후열전’)라고 한탄한 것처럼 말이다. 삼성에스디에스 소액주주들은 연일 회사 앞으로 몰려가 “분할 결정 탓에 주가가 폭락했다”며 장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너 3세들의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산업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상황이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보기술 서비스 산업은 1980년대 중반에 태동했고, 90년대까지는 재벌 계열사와 독자적으로 출범한 업체들이 공존했다. 쌍용정보통신은 국방과 통신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평가받았고, 유니온시스템 같은 중견업체들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대기업 계열사와 특정 분야 기술력을 가진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엘지씨엔에스는 다국적 업체인 이디에스(EDS)와 합작법인 과정을 거치며 기술과 경험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재벌들이 정보기술 서비스 계열사를 3세 승계와 지배구조 강화를 위해 종잣돈을 불릴 곳으로 점찍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해 공공·금융부문으로 발을 넓히고 싹쓸이 영업에 나서면서 시장이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영업이익이 목적이 아니었던 만큼 적자 수주도 불사해 ‘0원’ 수주 사태까지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정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던 중견 업체들이 고사하면서 빅3만 남은 꼴이 됐다. 살아남은 업체들도 대부분 빅3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롯데·현대·대우·효성도 뒤따라 정보기술 서비스 계열사를 설립했으나 빅3와 경쟁은 엄두도 못 내 내부 물량에 만족해야 했다.
급기야 정부가 과감한 처방을 내놨다. 2013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을 만들어 대기업 계열사의 공공부문 정보화 사업 참여를 차단했다. 국방과 외교 등 특수 분야만 참여를 허용했다. 하지만 공공부문 정보화 사업은 이미 대기업들이 대부분 파먹은데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 정보화보다 ‘4대강 사업 삽질’에 주력하면서 효과는 미미했다. 삼성에스디에스는 아예 공공부문 사업 포기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최근 ‘아이·시·비·엠’(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Cloud)·빅데이터(Big data)·모바일(Mobile))이 뜨면서 이 처방이 약해지고 있다. 대규모 공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기간사업이라 기술력과 경험이 뛰어난 대기업이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런 분야에는 사전승인 조건으로 대기업 계열사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에스디에스와 에스케이씨앤씨의 오너 3세 종잣돈 불리기 목적이 끝났기 때문에 예전 같은 행태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서울시가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발주 방침을 밝혔지만 수주전이 치열하지 않다. 에스케이 씨앤씨사업부문 관계자는 “돈 되고 여력 되면 하고 아니면 안 한다. 예전처럼 수익과 상관없이 무조건 따고 보자는 영업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재섭 유신재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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