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낮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위치한 케이티(KT) 아현국사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올 게 왔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화했다.”
서울 아현동 케이티(KT) 통신구 화재로 통신대란이 빚어진 데 대한 케이티 직원들의 반응이다. “화재 발생이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어진 통신대란 사태는 공공성보다 수익성과 효율성 강화에만 초점을 맞춘 경영을 하다가 불렀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아현국사는 원효지사 등 주위 지사·지점에 있던 네트워크 설비들을 끌어다 놔 서울 한복판의 4~5개 구를 관할할 정도로 큰 규모의 설비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간부(상무보 이상)급 관리책임자 없이 원효운용팀 소속 직원 2명이 관리를 맡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케이티 임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현국사의 경우 D등급이라는 이유로 고위급 책임자 배치 대상에서는 제외되고, 책임자가 없다 보니 이중·우회 선로 확보를 위한 투자와 24시간 근무자 상주 등 안전관리 업무를 주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이번 화재에 따른 피해지역이 예상외로 넓었던 것도 케이티가 원효지사를 인터넷데이터센터(IDC)로 재개발하면서 그곳에 있던 통신망 설비 등을 아현국사로 옮긴 탓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적으로 D등급 국사는 모두 27곳에 이른다. 이번 통신대란이 국가의 핵심 인프라인 통신망이 민영화된 이후 효율성 일변도의 경영 전략을 추구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해관 케이티 새노조 대변인은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부동산 개발·매각에 집중하면서 케이티 지사·지점 조직이 네트워크와 고객서비스 부문으로 분리돼 각각 집중화와 광역화 과정을 거치는데, 네트워크 설비들은 부동산 개발 가치가 떨어지는 곳으로 이관·집적되는 흐름을 보였다”며 “이런 흐름이 황창규 회장 취임 이후에도 이어져 이번 통신대란 사태를 불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망과 관리의 효율성을 최우선에 두다 보니 지사·지점 등을 통폐합하는 등 비용이 수반하는 안전 중심의 관리체계를 갖추는 것과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석채 회장 시절 케이티는 ‘국사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지사·지점을 재편해, 326개였던 지사를 236개로 축소했다. 이는 황창규 회장 취임 뒤에도 이어져 236개가 182개로 재편됐다. 부동산 개발과 인건비 절감이 목표였다. 재편 대상이 된 지점 가운데 상당수가 아현국사와 같은 ‘폐쇄형 전화국’으로 전락했다. 케이티가 우회로 구축 등 통신망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왔다는 것은 설비투자가 해마다 크게 줄어든 데서도 엿볼 수 있다. 2013년 3조3130억원에 이르던 케이티의 연간 설비투자는 지난해 2조2500억원까지 줄었고, 올해도 예상치(가이던스)는 2조3천억원이지만 3분기까지 집행된 금액은 1조1080억원에 그쳤다.
케이티 새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통신 대란은 민영화 이후 분산돼 있던 통신 장비를 집중시키고 통신 공공성을 불필요한 비용 요소로 취급하는 잘못된 경영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통신회사가 본분을 잊고 멀쩡한 장비 꺼가며 절감·폐국·통합 등 숫자놀음만 하고, 엉뚱한 미래사업에만 치중하면 앞으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또 일어난다” 등 케이티 내부 직원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케이티는 이런 지적에 대해 “비용 절감과 설비투자 효율화 노력이 없었다면, 케이티는 이미 살아남기 어려운 처지로 몰렸을 것이다. 언론 등이 아현국사에는 왜 우회로와 화재방지 시스템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데, 그렇게 하면 이용자들의 통신비 부담이 하염없이 늘어난다”고 반박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