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케이티(KT) 회장이 2017년 12월20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의야지마을에서 열린 5G 빌리지 조성 기념식에 참석해 올림픽 조직위 관계자들에게 5G 네트워크에 기반한 가상현실(AR) 마켓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이동통신(5G) 상용화에 가장 앞장선 케이티(KT)가 서비스 시작을 눈앞에 두고 ‘아현동 통신구 화재’로 발목이 잡혔다. 케이티는 앞서 3G, 4G 도입 때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 통신기술 세대전환 때 어려움을 겪는 게 케이티의 ‘징크스’가 된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2일 통신업계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케이티는 새 이동통신 서비스를 경쟁 사업자보다 먼저 적극적으로 준비해왔다. 올해 초 강원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때는 기술 표준이 없는 상태에서 세계 최초로 5G 통신의 ‘맛’을 보여주는 시범서비스를 선보였다. 직원 수백 명이 몇 달간 평창에 파견돼 노력한 결과였다. 애초 올해 하반기로 예상됐던 5G 주파수 경매가 상반기에 이뤄진 것도 케이티의 ‘노력’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5G 도입에 황창규 회장이 앞장서고, 홍보도 많이 했다. 케이티가 이미 오래전부터 5G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발생한 케이티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와 그에 따른 통신대란 사태로 이런 노력의 상당 부분이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했다. 케이티는 지난 1일 5G 전파 발사를 계기로 계획했던 ‘최고경영자 주관 기자간담회’를 가장 먼저 취소했고, 첫 전파 발사 축하 행사도 경기 과천 네트워크 관제센터에서 언론의 현장 취재를 막은 채 조촐하게 진행했다. 케이티는 기자간담회 취소 이유를 “통신망 복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잘 5G 서비스를 준비해놓고 막상 흥행 돌입 단계에서 발목이 잡힌 꼴이다.
아직 통신망 복구가 완전하지 않고 보상 문제도 남아있어, 당분간 케이티가 적극적으로 5G 마케팅을 펼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통신구 화재 예방’과 ‘유사시 우회로 확보를 통한 통신대란 최소화’ 등 기본을 지키지 않은 통신사가 무슨 새로운 이동통신을 도입하느냐는 비판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앞서 케이티는 2007년 2G 이동통신(PCS)에서 3G(WCDMA)로 넘어갈 때와 2011년 3G에서 4G(LTE)로 전환할 때도 이번처럼 돌발 상황을 맞았다. 2011년 4G 전환 때는 2G용으로 쓰던 주파수 일부를 4G용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2G 가입자들의 반발을 사 늦어지면서 4G 경쟁에서 뒤처졌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케이티 전 임원은 “경쟁 업체보다 아이폰을 먼저 들여와 가입자를 늘렸는데, 엘티이(4G) 상용화가 6개월가량 늦어지면서 거의 잃었다”고 말했다.
3G 전환 때는 ‘한국 무선인터넷 플랫폼 규격’인 위피(WIPI)를 탑재하지 않은 단말기를 공급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3G의 핵심은 무선인터넷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케이티는 ‘쑈’ 브랜드로 3G 선점에 나섰으나, 무선인터넷 관문 구실을 하는 위피 탑재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 단말기를 내 소비자들의 반발을 샀다.
개인휴대통신(PCS)인 2G 사업 때도 문제가 있었다. 애초 개인휴대통신은 ‘주파수만 다른 이동전화’로 간주돼, 1세대 이동전화 사업인 한국이동통신(현 에스케이텔레콤)을 에스케이(당시 선경)에 내주고 무선통신사업이 없던 케이티만 사업권을 갖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지낸 이석채씨가 정보통신부 장관이 된 뒤 개인휴대통신이 ‘이동전화와 다른 역무’로 새로 규정돼 케이티를 포함해 3개 사업자가 선정됐다. 케이티 쪽에서 보면 ‘독상’을 받게 됐다가 ‘두레반상’으로 바뀐 꼴이다. 한 통신사 임원은 “이동통신 세대교체 때마다 뜻하지 않은 사건이나 상황으로 발목이 잡히는 케이티의 징크스가 이번에도 재현됐다”며 “상당 부분은 통신기술과 이용자 특성을 잘 모르는 경영진이 기본을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앞서가려다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1일 0시 상용화된 5G 통신 전파가 세계 최초로 발사됐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은 경기 성남 분당 네트워크 관제센터에서 박정호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 이동통신 전파를 발사했고, 엘지유플러스(LGU+)는 서울 강서 마곡동 엘지사이언스파크 관제센터에서 하현회 부회장과 임직원 50여명의 카운트 다운과 박수 속에 전파를 쐈다.
5G 통신은 엘티이(LTE)의 뒤를 잇는 것으로,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을 특징으로 한다. 데이터 속도는 엘티이보다 20배 빠른 20Gbps, 지연시간(응답 속도)은 엘티이의 10분의 1 수준인 0.001초 이하다. 또한 1㎢ 내 연결 가능한 기기 수는 100만대(엘티이 10만대) 이상, 최저 보장 속도는 100Mbps(엘티이 0.1Mbps), 이용 가능한 최대 이동 속도는 시간당 500㎞(엘티이 350㎞)에 이른다.
그러나 아직 5G 전파를 잡을 수 있는 스마트폰 등 단말기가 출시되지 않아 개인 이용자들은 아직 새 이동통신을 이용할 수 없다. 새 이동통신을 지원하는 스마트폰·노트북 등은 내년 3월께 나올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새 이동통신을 무선랜(와이파이)으로 중계해주는 라우터(동글) 장비를 경유해야 해, 5G 서비스의 품질을 체감하기 어렵다.
기업 사업장 가운데서도 사전 계약에 따라 미리 네트워크가 구축된 곳에서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새 이동통신 1호 고객은 경기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부품 전문업체 ‘명화공업’이다. 이 회사에서는 생산라인에 있는 제품을 다각도로 촬영해 5G 모바일 라우터를 통해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하면, 인공지능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사진을 판독해 제품 결함 여부를 확인한다.
케이티의 새 이동통신 1호 가입자는 인공지능 로봇 ‘로타’이다. 케이티는 “단순한 이동통신의 세대교체가 아닌 생활과 산업 전반을 혁신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엘지유플러스 1호 고객은 경기 안양에 있는 산업기계 및 첨단부품 전문업체 ‘엘에스(LS)엠트론’이다. 이 업체는 새 이동통신으로 원격 트랙터 제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