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시이에스(CES)에서 구글이 자사 인공지능 솔루션이 탑재된 베엠베(BMW)와 볼보 자동차를 부스에 전시해 놓고 관람객들에게 시연해보이고 있다.
아이티(IT)·가전 전시회 ‘시이에스’(Consumer Electronics Show·CES) 취재를 위해 지난 7~10일(현지시각)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시장에서 경험한 것 중에 인상 깊었던 포인트를 정리해봤다.
■ 허물어지는 경계
가전을 중심으로 1967년 시작된 시이에스는 최근 모빌리티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이에 대다수 언론사들은 가전, 아이티를 담당하는 기자와 함께 최근에는 자동차 영역을 취재하는 기자를 시이에스에 함께 보낸다. 대형 가전사 전시관은 센트럴(중앙) 홀에, 자동차사들은 노스(북쪽) 홀에 위치해있다.
가전, 아이티 취재 몫으로 간 기자는 그러나 여러 차례 자동차에 시승하는 경험을 해야 했다. 먼저 소니 부스에서 그랬다. 일본의 대표 가전 업체 소니는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자율주행차 ‘비전-에스’(VISION-S) 실물을 전시해놨다. 소니는 자율주행 차량 등에 사용되는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세계 1위인데, 이번엔 완성차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깜짝 발표였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참가자들은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데 삼성전자나 에스케이(SK) ‘목줄’을 찬 이들도 눈에 띄었다.
구글 부스에도 차량 두 대가 놓여 있었다. 베엠베(BMW)와 볼보였다. 15분 가량 줄을 선 뒤에야 타볼 수 있었다. 구글 어시스턴트가 운전석 계기판을 지배했다. 실시간 통신으로 최적의 길을 알려주고 차량과 집안을 연결했다. 구글과 함께 미국의 대표 아이티 기업인 아마존과 퀄컴은 자동차 업체들이 위치한 노스 홀에 부스를 차렸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기술을 보다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마존은 람보르기니, 퀄컴은 랜드로바를 전시했다.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와 전자 기업 삼성전자는 동시에 ‘스마트 시티’를 들고 나왔다. 자율주행으로 이동하고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집 안팎은 물론 도시와 상호작용하는 미래형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가 제시하는 모형과, 전자회사가 앞세운 그것에 큰 차이는 없었다.
5세대(5G) 통신은 가정과 차량, 도시를 연결하고 인공지능은 자율주행 등 차원이 다른 편리함을 인간에게 제공한다. 이번 시이에스에서 가전과 통신 업체, 자동차 업체는 각 영역을 넘나들며 연결의 힘을 과시했다. 전통 산업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시이에스(CES)에서 일본의 가전 업체 소니가 자율주행 완성차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며 ‘비전-에스(VISION-S)’ 모형을 선보이고 있다.
■ 한국은 테스트베드
국내에서 출장 간 기자들에겐 특히 생경한 풍경이 있었다. 우리에겐 새롭지 않은 것에 외신 기자들이 “와우(WOW)”를 연발하는 모습이었다. 대표적인 건 삼성전자의 ‘더 세로’ 티브이(TV)였다. 모바일의 세로 화면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위해 디스플레이가 가로에서 세로로, 세로에서 가로로 자유자재로 돌아가는 제품이다. 지난해 5월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세로 티브이를 내놨는데 아직 국외에는 출시하지 않았다. 국외 관람객들에게 세로 티브이는 신선한 충격을 안긴 듯 했다. 시이에스를 주관하는 시티에이(CTA)는 ‘더 세로’에 최고 혁신상을 줬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더 세로’를 최고 제품으로 꼽았다. 이 전시관은 안을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늘 사람이 붐볐다. 올해 미국과 유럽에 출시될 예정이다. 중국 티브이 업체들은 발빠르게 ‘로테이팅(돌아가는)’ 티브이 모델들을 전시했다. 삼성전자의 ‘더 세로’를 모방한 셈인데 상용화 시점은 미정이거나 2021년께라고 했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엘지(LG)전자가 지난해 7월 국내에서 처음 내놓은 8K(8000) 올레드(OLED) 티브이 앞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엘지전자는 한국에 이어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과 유럽 등에 이 제품을 차례로 출시하고 있다. 중국 티브이 업체들도 8K 오엘이디(OLED) 제품을 여럿 내놨지만 엘지전자의 화질엔 한참 못미쳤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 지에프케이(GfK)는 13일 2020년 가전 매출 전망을 내놨는데, 큰 화면 티브이를 비롯한 대형 가전은 2% 성장한 239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집계됐다. 그 중심에 국내 대표 기업들이 놓일 것임을 이번 시이에스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시이에스(CES)에서 삼성전자가 가로·세로 자유자재로 시청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더 세로’를 전시하자 관람객들이 몰려 있다.
시이에스(CES)에서 중국의 텔레비전(TV) 업체 하이센스 전시관에 구글이 합동 부스를 차려놓고 구글 어시스턴트가 중국 제품에서 연동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어딜 가나 구글·아마존…중국은 주춤
구글과 아마존은 올해도 존재감을 여러 곳에서 보여줬다. 삼성전자처럼 전시관 면적이 큰 것도 아니었다. 그냥 곳곳에 있었다. 예컨대 구글은 하이센스와 티시엘(TCL) 등 중국 티브이 업체 전시관 한 켠에 각각 ‘구글 어시스턴트’ 부스를 마련했다. 중국 제품들과 구글의 인공지능이 어떻게 결합해 작동되는지 시연하기 위해서였다. 시이에스 전시장을 걷다보면 “헤이 구글”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아마존도 못지 않았다. 아마존 인공지능 ‘알렉사’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는 독일 가전업체 보쉬나 중국의 하이얼 전시장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5G와 인공지능을 통한 연결에서 구글과 아마존은 주도권을 더욱 공고히 했다.
시이에스(CES)에서 중국의 대표 기업 화웨이가 삼성전자에 이어 내놓은 폴더블 스마트폰을 관람객들에게 보이고 있다.
미국과 ‘아이티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반면 이번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성비갑’ 홈 아이오티(IoT·사물인터넷)의 상징 샤오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부스를 차리지 않았다. ‘중국의 아마존’ 알리바바는 올해 처음 전시관을 뺐다. 미중 무역전쟁의 주인공 화웨이는 최근 내놓은 스마트 티브이 등은 전시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 위주로만 부스를 꾸렸다. 지난해보다 규모도 작았다. 중국의 소극적 참여는 시이에스 분위기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오후가 되면 전시관에서 다소 한산함이 느껴지는 곳들도 있었는데 여러차례 시이에스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2~3년 전에 비해 중국 관람객들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나마 관심이 집중된 곳은 화웨이의 폴더블 스마트폰 ‘메이트 X’ 전시였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접히는 스마트폰을 지난해 상용화했는데 이를 체험해보려는 이들이 많았다.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에서만 판매중이라 실물 목격이 쉽지 않은 탓이다. 최근 아이폰의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출하량 세계 2위를 차지한 화웨이는 2020년을 세계 1위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원년으로 잡았다. 그러나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등이 탑재돼 있지 않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시이에스(CES) 전시에서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푸두테크가 고양이 얼굴의 로봇이 자율주행으로 접시를 손님에게 나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혁신 집약된 로봇·AI 전시관
센트럴 홀과 노스 홀에서 조금 떨어진 ‘사우스 홀’에는 로봇과 인공지능 관련 전시관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센트럴 홀에서 15분 가량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이 곳엔 작은 규모의 부스들이 몰려 있다. 주로 공룡 기업들을 취재하다 중소 업체들의 공간에 도달하니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특히 중국 스타트업 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화웨이 등 대형 업체에 비해 위축된 모습이 없었다.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푸두테크는 고양이 얼굴로 식당에서 접시를 나르는 ‘벨라봇’으로 눈길을 끌었다. 사물을 인식해 자율주행이 가능하며 음식을 받은 손님이 귀를 만져주면 웃으며 ‘야옹’ 소리를 냈다. 중국의 로보센은 3초만에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 로봇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파워비전은 얼굴인식 기능으로 특정 대상물을 쫓으며 촬영하는 드론을 새롭게 내놨다.
이밖에 작은 손목시계 안에 넣고 다니다 촬영이 필요하면 꺼낼 수 있는 소형 드론과 노인이 넘어지면 움직임을 감지해 가족에게 연락해주는 돌봄 로봇까지 소규모 부스에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이 많았다. 혁신과 미래가 엿보였다.
글·사진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