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KT)는 지난 1월 정기 임원인사를 하면서 ‘58살’(1962년생)을 기준으로 삼았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58살 이하 연령대에서 임원을 선임하거나 승진시키고, 그 이상은 퇴진시키거나 자회사로 내보낸다는 뜻이다.
그런데 1960년생 이철규(60살)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인프라운용혁신실장(옛 네트워크부문장)에 임명됐다. “구현모 사장이 (이철규 부사장 인사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이철규 부사장이 정부 고위인사와 고등학교 동문이다” 등 각종 추측성 뒷말이 많았다.
구현모 케이티 대표이사(사장)가 직접 인사 배경을 밝혔다. 구 대표는 지난 24일 <한겨레>와 만나 나이 기준을 벗어난 이 부사장을 중용한 이유에 대해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케이티 내부에서 유선 통신망 구축·운영 및 통신재난 대응 경험과 지식으로는 이 부사장을 따를 자가 없다. 나이와 상관없이 회사 경영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임 네트워크부문장도 통신망 전문가였는데, 무선 쪽이었다. 더욱이 전임자가 6년 가까이 조직을 이끌다 보니 네트워크부문 쪽이 무선 쪽 경험자 중심으로 채워졌다. 지난해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를 계기로 이제는 유선 쪽 실무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다시 네트워크부문을 총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8살 이하에서는 유선 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무선 통신망도 기지국서 모바일 단말기까지 구간을 빼고는 유선이다. 특히 케이티가 보유한 통신망에선 유선이 핵심이다. 케이티 내부에선 오래 전부터 “케이티에 유선 전문가가 없어 머지않아 큰 사단이 날 것”이란 말이 ‘괴담’처럼 있어왔다. “유선 전문가가 없으니, 통신망과 통신구 관리·점검이 제대로 될 리가 없고, 따라서 큰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거나 통신구 화재 같은 사고가 나면 통신재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석채 전 회장을 시작으로 통신 비전문가들이 ‘낙하산 인사’를 통해 연거푸 회장으로 와 회사를 망가트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이런 우려는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에서 여실히 입증됐다. 2018년 11월24일 아현국사 앞 통신구서 화재가 발생한 게 서울 3개 구와 경기도 일부 지역의 통신서비스를 한달 가까이 마비시키는 재난으로 이어졌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케이티 고위임원 출신은 <한겨레>와 만나 “통신구 화재가 났는데, 누구도 복구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다. 유선 통신망 구축·운용 경험자를 수소문한 끝에 자회사 케이티서브마린 대표로 가 있던 이 전무를 찾아 데려왔다. 이 때문에 복구 작업이 2주 가량 늦어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광화문·여의도 통신구 화재 때는 통신망이 각각 1~3일만에 만에 통신 이용이 재개됐으나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 때는 3주 가까이 걸렸다.
케이티 전·현직 임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석채 전 회장 취임 뒤 이동통신 자회사 케이티에프(KTF)를 합병하고 이동통신 사업 경험자들을 중용하면서 케이티 공채 출신의 유선망 전문가들은 밀려나거나 퇴직했다. 또한 통신 비전문가들이 요직을 차지해 실적 중시 경영을 하다 보니 통신의 공공성과 통신망·통신구 관리 등에 대한 투자가 후순위로 밀렸다. 이런 상황은 황창규 전 회장 시절까지 이어졌다. 구 대표는 이와 관련해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 당시 복구 인력을 찾으니 대부분 회사를 떠나고 없었다”며 “네트워크부문 책임자는 유선과 무선 전문가가 번갈아가며 맡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경영이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케이티 무형 자산 가치가 크게 훼손됐고,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케이티 전직 고위임원은 “케이티 통신망 관리자들은 퇴근 뒤에도 바람 새는 소리(대형 통신 케이블은 공기압으로 관리돼 훼손되면 바람이 새며 압력이 떨어진다)만으로도 통신망 상태를 안다고 한다. 물론 헛소리지만, 언제 어디서나 통신망 상태에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부 출신들이 최고경영자 내지 부서 책임자로 오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모두 내보냈다”고 말했다.
이는 경쟁업체 쪽도 인정하는 케이티의 핵심 경쟁력이다. 에스케이텔레콤 고위임원은 “마케팅에서는 케이티 임직원들이 학연과 지연으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물론이고 마을 통·이장과 부녀회장까지 관리하고 있는 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군을 포함한 국가기관들의 발주에서는 케이티의 유지보수 능력과 임직원들의 통신의 공공성에 대한 소명 의식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차별성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통신사들의 긴축경영으로 중소 통신설비 자재업체와 통신공사업체 등이 고사 위기로 몰리고 있다’는
<한겨레> 보도와 관련해 “통신사들은 사업의 특성상 코로나19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나라가 어려울 때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보고, 케이티가 앞장설 용의도 있다. 정부도 주파수 이용 대가를 감면하고, 이제는 소용없어진 서비스 중단을 허가하는 등의 조처로 맞장구를 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