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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승리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등록 2020-06-04 17:21수정 2020-06-04 17:28

우체국·인터넷우체국서 5일부터 판매
“민족 주체성 지키고자 노력한 독립군과
독립 희망·신념 심어준 전투 기억하자 의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최초의 승리이자 최고의 전과를 올린 전투로 꼽히는 봉오동 전투 승리 100주년 기념우표 68만8천장을 5일 발행한다고 4일 밝혔다. 기념우표엔 독립기념관이 소장 중인 서양화가 임직순의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 그림이 담겼다.

박종석 우정사업본부장은 “민족 주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한 독립군을 기억하고, 독립의 희망과 신념을 심어준 봉오동 전투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미다. 우체국을 방문하거나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봉오동 전투는 일제 탄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무장투쟁으로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1920년대 독립전쟁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은 1920년 6월4일 새벽,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으로 진입해 일본군 헌병대를 격파하고 화룡현 월신강 삼둔자로 복귀했다. 추격에 나선 일본군은 독립군 부대를 발견하지 못하자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 이에 독립군은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군을 선제 공격한 ‘삼둔자 전투’는 봉오동 전투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다.

패전 소식을 접한 일본군 제19사단 사령부는 ‘월강추격대’를 편성해 독립군 섬멸에 나섰다. 1920년 6월7일 홍범도 장군 등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는 ‘죽음의 골짜기’라 불리던 봉오동으로 일본군을 유인하여 섬멸했다. 당시 <독립신문> 보도를 보면, 일본군 사상자는 457명에 달했고, 독립군 사상자는 6명에 그쳤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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