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용산구 엘지유플러스(LGU+) 사옥 모습. 연합뉴스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미국 정부의 압박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화웨이 통신장비를 배제한 통신사를 ‘깨끗한 업체’라 부르며 나머지 업체들도 ‘반화웨이 전선’에 동참하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미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가 국내 업체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 국무부 사이버·국제통신정보정책 담당 부차관보는 21일(현지시각) 뉴욕포린프레스센터 주관으로 열린 브리핑에서 “우리는 엘지유플러스(LGU+) 같은 기업들이 (통신장비 공급업체를) 믿을 수 있는 곳으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간시설을 보유하고 운영하는 쪽은 신뢰할 수 있는 업체와 거래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5세대(5G) 이동통신을 토대로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원격의료 등을 추진하는 업체들을 예로 들었다.
당장 관심은 엘지유플러스의 행보다. 국내 통신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의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를 채택한 업체라서다.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케이티(KT)도 5세대 사업 초기부터 화웨이 장비 도입을 적극 검토하다가 미국 쪽이 보안 문제를 제기하자 제외한 바 있다. 단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교)만 따졌을 땐 화웨이 장비가 우수할 뿐더러 비용도 30%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 분위기다. 엘지유플러스 쪽은 “난감하다”면서도 “따로 입장 자료는 내지 않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보안 문제는 미국이 내세우는 핑계이고, 미-중의 패권 싸움에 힘 없는 나라 통신사들이 등 터지는 꼴 아니냐”고 말했다.
유선 통신망 네트워크로 시야를 넓히면 사정이 한층 복잡해진다. 국내 대기업과 포털·금융회사들의 내부 통신망 네트워크엔 화웨이 장비가 상당수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체 대표는 “사실상 유선 쪽은 화웨이 장비 없이는 네트워크 구축·운영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미 정부의 압력이 현실화하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만일 엘지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려면 엘티이(LTE) 통신망부터 다시 구축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이 적지 않아서다. 스트레이어 부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엘지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배제해도 경제적인 인센티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에 비춰볼 때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시킬 가능성도 극히 낮다. 정부 관계자 역시 “통신망의 보안성과 안정성 등을 살필 뿐, 통신사가 어떤 업체 장비를 사용하는지는 각 사업자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과거 중국과의 무역 분쟁 당시 우리 정부는 중국산 마늘 수입 제한 카드를 만지작거리다 중국이 한국산 휴대전화 단말기 수입을 제한하려 하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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