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코인 발행’ 엄격히 금지
특구 1년 부산은 ‘통제’로 숨구멍
BNK 스테이블코인, 특구서 통용
증권형토큰식 부동산 ‘공모’ 투자
관련부처 허용범위 설득·조정하며
블록체인 필수 암호화폐 산업 육성
특구 1년 부산은 ‘통제’로 숨구멍
BNK 스테이블코인, 특구서 통용
증권형토큰식 부동산 ‘공모’ 투자
관련부처 허용범위 설득·조정하며
블록체인 필수 암호화폐 산업 육성
부산광역시는 지난해 7월 국내 첫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 지정됐다. 지금까지 추가된 블록체인 특구는 없었으니 국내에 유일무이한 곳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부산은 결국 ‘금단의 열매’를 건드리고 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과 뗄 수 없는 이 열매의 이름은 바로 암호화폐다.
신창호 부산광역시 미래산업국장은 지난 7월 공개석상에서 “부산에 건전하고 통제 가능한 토큰 이코노미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토큰 이코노미’는 블록체인의 토큰(암호화폐)을 중심으로 한 경제활동 시스템을 뜻한다. “건전하고 통제 가능한”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 것은, 과거와 같은 암호화폐 투기 광풍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이 발언은 2018년 이후 정부가 유지해온 기조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동안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되 암호화폐는 금지한다’고 해온 정부의 분위기와 달리, ‘통제’는 약간 숨구멍을 틔워준 표현이다.
BNK의 스테이블코인 ‘디지털바우처’
놀랍게도 부산 특구에선 실제 암호화폐의 실사용 사례가 나오고 있다. 특구가 9월부터 진행하게 될 4개 사업의 규제특례 실증 4건과 내년 1월부터 추가하게 될 3개 사업의 규제특례 실증 10건 중 가운데, 핵심과 뼈대는 암호화폐를 활용한 금융 사업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비엔케이(BNK)부산은행의 디지털바우처는 부산 소재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불 전자지급수단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만든 지급·결제 수단이라는 것은, 그것이 암호화폐라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 디지털바우처의 가치는 법정화폐인 원화에 ‘일대일’로 고정되며, 부산은행이 이를 위해 지급보증을 선다. 사실상 부산은행이 만든 가치고정형 암호화폐, 곧 스테이블코인인 셈이다.
가치가 고정돼 있다 보니 이용자는 암호화폐를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큰 변동성 탓에 투기 대상이 됐던 여느 암호화폐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암호화폐 발행을 금지하는 정부가 디지털바우처에는 규제 특례 허가를 내준 것은 그 덕이 클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바우처 사업은 발행 자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실증 특례 서비스와 연계돼 시너지를 낸다는 게 특구 안팎의 이야기다. 김상환 부산은행 디지털전략부 블록체인팀 부장은 “비대면 경제 필요성이 커지면서 실물 화폐에서 디지털 화폐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디지털바우처가 특구 사업 참여 기업들 사이에서 대안 디지털 화폐로 쓰이며 그 가능성을 증명할 것”이라고 <코인데스크코리아>에 말했다.
실제 다른 특구 사업들의 기업-소비자(B2C) 및 기업 간(B2B) 거래에선 디지털바우처의 쓰임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김상환 부장은 “향후 특구 밖의 기업들에도 디지털바우처를 확산시켜 생태계를 키우고, 궁극적으로는 울산·경남으로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은행은 이달 중 내부 테스트를 마무리하고, 9월 디지털바우처 앱을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부동산 쪼개 주식처럼 투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하나의 부동산에 여러 사람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한 부동산 집합투자와 수익배분 서비스 사업도 암호화폐를 활용한 또 다른 디지털자산 금융 사례다. 이 사업은 세종텔레콤과 이지스자산운용 등이 컨소시엄을 꾸려 제안한 것으로, 부동산 펀드를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으로 만들고 중개인 없이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유통하는 서비스다. 이를테면 부산 서면에 있는 100억원짜리 오피스 건물의 소유권을 1만개로 쪼개어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만들고, 개별 토큰을 마치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하는 공모 방식이다.
투자자 보호와 부산 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부산은행 계좌를 가진 사람만, 부산 지역 부동산 펀드에 한해 투자할 수 있다. 전체 펀드 운용 규모는 5천억원 규모로 제한되며, 연소득 1억원 이하는 최대 2천만원까지, 이상은 4천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사실상 증권형 토큰(STO) 사업과 다르지 않지만, 컨소시엄은 블록체인과 한국예탁결제원에 동시 등록해 위법 가능성을 차단했다. 컨소시엄은 내년 상반기 플랫폼 개발과 내부 테스트를 완료하고, 내년 하반기 정식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박효진 세종텔레콤 신사업본부장은 “기존 사모펀드에서 발생하는 신뢰관계 부재 등 문제를 블록체인을 통한 투명한 업무 처리로 해결하고, 공모 시장에 자금이 흘러들게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특구에서 이 같은 암호화폐 금융 사업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것은 부산시 등 특구 관련 당국의 치밀한 준비와 끈질긴 협상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규제자유특구라는 이름이 주는 인상과 달리 아무나, 모든 규제를 벗어나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특정 규제 항목의 완화를 요구하며 사업계획을 제출한 뒤,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관계 부처들이 검토·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창호 국장은 12일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를 만나, “암호화폐와 연관이 크지 않은 다른 사업들과 달리, 부산은행의 디지털바우처와 세종텔레콤 컨소시엄의 부동산 집합투자 플랫폼은 관계 부처의 반발과 우려가 커 최종 선정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코인 발행’ 조처와 맞물려 암호화폐의 부정적 인상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러면서도 신 국장은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라는 시험대 위에서 디지털바우처 사업과 부동산 집합투자 플랫폼 사업이 제대로 된다는 걸 입증한 뒤, 장기적으로는 거래소나 증권형 토큰 관련 사업도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외 블록체인 사업도 ‘속속’
부산 특구의 블록체인 사업은 금융 외에도 관광과 공공안전, 물류, 마이데이터 등 분야에서 속도를 내는 중이다. 특히 지난해 1차 실증 대상에 선정된 기업은 모두 순차적으로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현대페이와 한국투어패스는 지난달 부산 스마트투어 플랫폼 ‘블록패스’를 출시했고, 코인플러그는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시민 제보 등으로 수집한 위치정보 포함 영상을 경찰과 소방서 등에 공유하는 블록체인 기반 시민안전제보앱을 9월 출시한다. 비피앤솔루션과 부산테크노파크는 고등어와 아귀 등 수산물 생산(양륙)과 가공, 물류, 판매, 그리고 소비 등 전 과정을 사물인터넷(IoT)과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관리하는 스마트 해양물류 플랫폼 서비스 실증을 9월부터 시작한다.
또 지난달 추가 실증 대상에 선정된 에이아이플랫폼 컨소시엄은 의료마이데이터 플랫폼 사업을, 글로스퍼 컨소시엄은 데이터 리워드 및 거래 플랫폼 사업을 내년 1월 시작하기 위해 각각 준비 중이다. 특구의 실증 사업은 사업별로 2년 동안 운영해본 뒤, 실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제화를 위한 절차가 진행된다. 그리고 법제화까지 완료되면, 비로소 이를 바탕으로 특구 바깥에서도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부산시는 특례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은 기업도 특구 내 블록체인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부산은행이 부산 서구청과 부산대 병원, 동아대 병원, 케이에스넷 등 7개 기관과 맺은 ‘지역상생형 모바일 의료관광 플랫폼’ 업무 협약이 대표 사례다.
이 밖에도 부산시는 시민을 위한 블록체인 기반 신분 확인 서비스 블록체인 체험앱을 출시하는 등 블록체인과 연계점을 늘려가고 있다. 체험앱에서는 부산시민증과 부산시청 방문증, 다자녀가정 가족사랑 카드 등을 관리할 수 있다.
정인선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ren@coindes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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