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개발 중인 ‘디지털 위안’(CBDC) 출시가 임박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온다. 최근 5만명이 참여하는 결제 실험이 이뤄졌고, 디지털 위안화에 법정화폐 지위를 부여하는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현금 없는 사회’의 중심축이 알리바바(알리페이), 텐센트(위챗페이) 등 민간 결제기업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으로 넘어갈지 주목된다.
인민은행은 지난달 중국 남부의 대도시 선전에서 디지털 위안으로 실제 결제를 하는 실험을 마쳤다. 임의 선발된 시민 5만명은 스마트폰으로 200위안씩, 총 1000만위안(약 17억원)을 지급받았다. 현지 언론엔 디지털 위안 결제가 알리페이, 위챗페이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실험 참가자들의 후기가 전해졌다.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을 신속하게 배포하기 위해 공상은행 등 주요 상업은행 네 곳이 이미 구축해둔 인프라를 십분 활용했다. 마트, 서점, 주유소 등 상점 3000여곳은 은행의 도움을 받아 포스(POS) 단말기의 결제수단에 디지털 위안을 추가했다. 시민들도 이들 은행이 만든 지갑 앱을 내려받아 정보무늬(QR코드) 등 익숙한 방식으로 결제했다.
인민은행은 민간기업들과도 협력 중이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 화웨이는 곧 출시할 ‘메이트40’ 시리즈에 디지털 위안 지갑을 탑재한다. 화웨이는 지난해 11월 인민은행 디지털화폐 연구소와 핀테크 연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민간 인프라를 활용하되 화폐 발행과 준비금 보장 등 전반적인 운영과 통제는 인민은행이 하는 ‘중앙화’ 형태라는 점은, 디지털 위안이 페이스북 리브라 등 민간기업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와 다른 점이다. 무창춘 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장은 지난달 말 “디지털 위안을 중앙화 방식으로 관리하면 가상자산(암호화폐) 및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에 의한 화폐 주권 침식을 막고,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조달 등 범죄행위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은 페이스북 리브라 등을 뜻한다.
선전시 실험 종료 직후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에 지폐와 동전 등 법정화폐와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의 인민은행법 개정안을 내놨다. 개정안엔 어떠한 법인과 개인도 위안을 대체할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거나 판매할 수 없고, 이런 행위가 적발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디지털 위안이 알리페이·위챗페이 등 민간 결제 플랫폼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주목된다. 무 소장은 “디지털 위안이 화폐라면, 알리페이·위챗페이 등은 화폐를 담는 지갑이므로 상충 관계가 아닌 상보 관계”라며 디지털 위안이 민간 결제수단을 밀어낼 거란 추측에 선을 그었다. 선전에서의 결제 실험에 민간 은행의 결제망을 활용했듯, 알리페이·위챗페이 등 플랫폼에 디지털 위안을 탑재할 가능성도 엿보이는 발언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에스앤피(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디지털 위안이 민간 결제수단 간 상호운용성을 높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는 전자상거래 사이트 징둥닷컴(JD.com)에서 알리페이로 결제할 수 없는 등 민간기업들이 결제 생태계를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한다. 당국이 이런 장벽을 디지털 위안으로 허물려 한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위안은 현금과 똑같은 지위를 갖는 법정화폐이므로, 정부가 강제할 경우 기업들은 결제 옵션에 디지털 위안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다.
국외에서도 디지털 위안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파급력은 더 커진다. 특히 ‘일대일로’ 참여 국가들에서 디지털 위안이 널리 쓰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디지털 위안은 돈을 주고받는 두 휴대전화 기기 모두가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 않더라도 근거리무선통신(NFC)을 활용한 오프라인 송금·결제를 지원한다. 일각에선 이 기능이 인터넷 인프라가 열악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소비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경계하는 이유다.
정인선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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