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경실련과 인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열린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바람직한 통합방향’ 토론회에선 대한항공 항공기정비(MRO) 사업부문 분리·독립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반면 당사자인 대한항공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일축하는 모습을 보여,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관련 쟁점을 짚어보는 토론회는 3차례 열렸는데, 대한항공 엠아르오 사업부문 분리·독립화 문제가 앞세워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토론회 대표 발제를 맡은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과 관련한 4가지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대한항공 엠아르오 사업부문 분리·독립화를 꼽았다. 그는 “항공서비스 시장과 함께 지속 성장하는 엠아르오 산업은 노동집약적 업종으로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유리하다. 인천공항은 인프라와 접근성의 이점을 극대화할 전략이 필요하며, 핵심사업 유치를 위해 대한항공 등 관련 사업자에게 외국 투자 기업 수준의 유인을 제공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진 토론에서 윤희택 인천상의 지역경제실장은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8천억원을 지원하면서 항공정비 전문화를 내세웠다. 산업은행과 국토교통부가 대한항공 엠아르오 사업부문 분리·독립을 통한 항공정비산업 발전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대한항공 항공기정비 사업부문을 전문업체로 독립시키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대한항공 엠아르오 사업부문을 독립시켜 항공기정비 전문업체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은행이 국민세금으로 대한항공에 투입한 8천억원이 항공산업 재편과 정상화 종잣돈으로 쓰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차원에서 대한항공이 항공기정비 사업부분 분리·독립 플랜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대한항공 사장은 기자간담회 등에서 여전히 자체정비 능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대한항공 내부에 둬서는 전문업체로 발전시키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 발제에 따르면, 항공기정비의 핵심은 엔진·부품 정비이고, 우리나라에서 엔진·부품 정비능력을 갖춘 곳은 대한항공 뿐이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은 항공기정비를 대부분 국외업체에 맡기고 있다. 저비용항공사들이 항공기정비를 국외업체에 맡기며 지불하는 비용 만도 연간 1조1250억원에 달한다. 한 저비용항공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쟁업체(대한항공)에 항공기정비를 맡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도 대한항공과 인수·합병 계약을 맺은 뒤 그동안 국외업체에 의존하던 항공기정비를 대한항공으로 점차 바꾸고 있다.
저비용항공사들은 물론이고 추가로 외국 항공사들의 항공기정비 물량까지 확보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항공기정비 기술이 축적되게 하기 위해서는 대한항공의 항공기정비 사업부문을 전문업체로 독립시켜 경쟁 항공사들도 거리낌 없이 항공기정비를 맡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시민·경제단체 쪽 주장이다. 토론회 토론자들은 “산업은행이 투입한 8천억원이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의 경영권 보호 자금으로 쓰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도 산업은행과 국토교통부가 대한항공으로 하여금 엠아르오 사업부문 분리·독립 일정을 내놓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엠아르오 사업부문 분리·매각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경영간섭”이라고 반박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산업은행이 8천억원 투자 결정을 할 때 국내 항공산업 발전을 앞세운 건 맞지만, 대한항공 엠아르오 사업부문 분리·독립을 조건으로 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이날 토론회에 ‘양대 항공사 통합 관련 산업은행 입장’ 문서에서 “대한항공 엠아르오 사업 관련 별도법인 설립 등은 회사의 자율적 경영판단 사안이고, 엠아르오 산업 재편 역시 국토교통부 등 주무부처의 정책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양사의 성공적인 통합 이후 거리·정책적 관점에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항공의 엠아르오 사업과 관련해 국가 전체적인 엠아르오 산업 육성 필요성을 감안해 항공정비·부품 산업의 중장기 육성 발전계획 수립을 요청하고 경영평가 항목에도 반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사회를 맡은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마무리 발언에서 “산업은행의 한진칼 투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서는 국토교통부 담당과장은 물론이고 국회 관련 상임위 의원들도 계약서 내용을 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국회 공청회 등을 통해 구체적인 계약 내용과 이행 방안 등이 검증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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