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4월12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반도체 및 공급망 복원과 관련해 기업 최고경영자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REUTERS
“정부는 다른 정당의 언론 자유와 선거운동을, 또 어떤 정당에 반대하는 시민적 자유를 구속할 수 없다. 선거 주기를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거의 아무런 제약이 없다. 정부는 모든 것을 국유화하거나 모든 것을 사적 부문에 넘겨줄 수 있고, 두 극단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취할 수도 있다. 원하는 어떠한 조세도 부과할 수 있고, 어떤 지출도 집행할 수 있다.” 1957년 정치학자 앤서니 다운스가 경제이론을 동원해 민주주의에 대한 분석·해명을 시도한 자신의 책에서 한 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한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6조달러·약 6700조원)의 2022년 예산안,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상 최대 규모 재정지출’(향후 10년간 인프라 투자 약 4조달러·약 4500조원) 플랜, 이를 위한 획기적인 증세(법인세·개인소득세) 정책을 대면하면서 코로나19와 기후변화 시대에 이른바 ‘정치경제학’을 다시 생각해본다.
‘시장’(기업·산업·노동·상품)은 자본력과 권력 등 힘과 위계가 근본적으로 작동하는 불평등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정치는 △시장에 대항하고 도전하는, 시장을 제어하는 정치 △시장과 양립하는 정치 △시장을 위한 정치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 영역을 교정하는 힘이자 ‘가능성과 타협의 예술’로서 정치는 시장이 낳는 사회경제적 갈등이 거리에서 돌멩이로 표출되기 이전에 ‘종이 돌멩이’(표)를 던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험하는 정치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정식화된 도식으로 명쾌하게 구획하기란 어렵다. 대다수 경제정책마다 제어·양립·지원 등 여러 성격이 복잡하게 뒤섞이고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임박한 기후변화 대응과 산업경쟁력 강화, 코로나 경제 재건을 내세운 바이드노믹스에도 여러 측면이 혼재됐다.
경제평론가들은 우리 시대를 “국내외 거대 기업들이 통제 불능의 권력을 행사하고 시장에서 계약·거래 자유를 누리면서 횡포를 일삼는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명명하기 좋아한다. 하지만 바이드노믹스는 오늘날 경제적 측면에서 정부의 역할과 범위는 사실상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64년 전 다운스가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창한다. 금융위기와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전세계 시장 영역에서 ‘신자유주의 파고’가 점차 퇴조하고 국가의 제도적·규제적 개입(제어·양립·지원 정책)이 그 범위와 규모, 강도에서 놀라울 정도로 확장되는 것일까? 가히 주목되는, 새롭고 급변하는 현상이다.
경제원론은 국가의 시장 개입을 다룬 장마다 정부지출(투자)이 민간투자를 대신하거나 보완하는 정도를 넘어 ‘쫓아낸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도출한다. 지출 재원이 되는 세금 징수가 경제 전체에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다시 요약한다. 하지만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조차 “이 프로그램(뉴딜 정책)의 기본 명제는, 이윤 추구의 자유기업 체제가 우리 세대에서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가 아직 시도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적 이윤과 자유기업 체제를 구원한 건 바로 나의 행정부였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 찰스 어윈 제너럴모터스(GM) 사장은 “GM에 좋은 건 미국에 좋은 것이고 미국에 좋은 건 곧 GM에 좋은 것이다”라고 루스벨트에 화답하듯 말했다.
이른 아침 태양이 스스로 뒤로 물러설 정도로 고층 사옥의 위용을 뽐내는 미국 뉴욕의 거대 기업들 못지않게 바이든의 백악관은 코로나·기후변화 시대에 ‘고도의 미국·세계 경영’ 역할을 자임하고, 그런 기능을 넘어 어쩌면 한 시대를 표현하고 있다.
조계완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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