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4일 남양유업 최대주주인 홍원식 회장이 불가리스 사태에 사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유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면역에 도움된다는 허위 사실을 알린 데 책임을 지고 경영 퇴진 및 지분 매각에 나섰던 남양유업 대주주 홍원식 회장이 지분 매각 철회를 선언했다.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와 3개월 여 전 맺은 주식 매매 계약이 불평등하다는 이유에서다. 한앤컴퍼니 쪽은 주식 매매 계약은 유효하다는 주장과 함께 법원이 홍 회장의 임의적인 지분 매각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인용한 사실을 공개했다. 홍 회장 퇴진과 지분 매각 결정에 급반등했던 남양유업 주가는 매매 종결이 불투명해지면서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총수 리스크가 업계 3위 유업체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홍원식, “부도덕한 사모펀드에 넘길 수 없다”
홍원식 회장은 1일 입장문을 내어 한앤캠퍼니와 맺은 주식 매매 계약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5월 홍 회장 일가는 보유 지분 53%를 3107억원에 한앤컴퍼니에 넘기는 주식 매매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당시 지분 매각 결정은 남양유업이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면역에 도움이 된다는 허위 사실을 공표하면서 불거진 불매 운동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경찰 등 정부 관계 당국의 조사를 고려한 조처였다.
홍 회장은 계약 해지 이유로 우선 계약 자체의 불평등성을 들었다. 그는 “M&A(인수합병) 거래에서는 이례적일 만큼 이번 계약에서 계약금도 한 푼 받지 않았고 계약 내용 또한 매수인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한 계약이었다. 그럼에도 남양유업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경영권 교체라는 대의를 이행하고자 주식 매각 계약을 묵묵히 추진했다”고 말했다.
또 홍 회장은 “계약 체결 후 매수자 쪽과 계약 체결 이전부터 쌍방 합의가 된 사항에 한해서만 이행을 요청했다”고 언급했다. 한앤컴퍼니 쪽이 지난달 30일 홍 회장 쪽이 계약서에는 담기지 않은 무리한 요구를 하며 계약 이행을 거부하고 있으며, 그 요구는 홍 회장 쪽 개인 이익과 관련된 사항이라고 언급한 데 대한 반박인 셈이다.
홍 회장은 이어 한앤컴퍼니를 향한 강한 불신도 드러냈다. 그는 “선친 때부터 57년을 소중히 일궈온 남양유업을 이렇게 쉬이 말을 바꾸는 부도덕한 사모펀드에 넘길 수 없다”며 “(매매 계약 해지는) 오랜 시간 함께한 임직원과 주주, 대리점, 낙농주, 고객들을 위한 대주주로서의 마지막 책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홍 회장은 한앤컴퍼니가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고, 부당한 경영 간섭도 했다고 언급했다.
한앤코, “매매 계약 유효”…대주주 리스크에 남양유업 앞길 험난
한앤컴퍼니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홍 회장 쪽 주장을 전면 부인하며 “계약은 현재도 유효하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달 23일 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사실도 이날 공개했다. 이 가처분은 홍 회장이 지분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홍 회장이 한앤컴퍼니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매수자를 찾아 지분을 팔지 못하게 한 셈이다. 이와 별개로 한앤컴퍼니는 지난달 23일 홍 회장 쪽을 상대로 매매 계약 이행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바 있다.
남양유업 정상화는 장기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양쪽이 원색 비난을 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은 데다, 홍 회장이 새 매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홍 회장은 경영 퇴진 선언 이후에도 임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물러났던 홍 회장의 장남도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는 등 장기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홍 회장 쪽은 사모펀드 운용 경험이 있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경영진을 재편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홍 회장 쪽 경영 퇴진과 지분 매각 결정에 한때 주당 77만원 가까이 치솟았던 남양유업 주가는 계약 양 당사자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50만원대 중반까지 주저앉은 상황이다. 양 당사자 간 입장문 공방이 있었던 이날도 이 회사 주가는 전일(거래일 기준) 보다 3% 남짓 급락했다. 총수 일가 리스크가 다시 불거지며 사라진 시가총액은 약 1600억원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