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서비스 민항기 정비동서 김지현 정비사가 보잉737 항공기 중정비 일을 하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서비스(KAEMS·이하 캠스) 민항기 정비동. 제주항공 보잉737 항공기가 입고돼 완전히 풀어헤쳐진 상태로 기체중정비를 받고 있었다. 항공기 조종실 쪽에서 유독 쩌렁쩌렁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캠스의 항공정비사 175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김지현(24)씨다. 숏컷 머리에 모자를 뒤로 둘러쓰고 통통 튀듯 정비 현장을 누비는 모습이 영락없는 제트(Z)세대다. 열흘 뒤인 13일 그를 전화로 만나 항공정비사 직업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3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서비스 민항기 정비동서 김지현 정비사가 보잉737 항공기를 정비하고 있다.
“항공정비 직업이요? 동네 카센터에서 하는 일과 다를 바 없어요. 대상이 차가 아니라 항공기라는 점만 달라요.”
항공정비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은데, 항공정비 일을 너무 허투루 얘기하는 것 아닌가라고 재차 물었다. “항공정비는 자동화가 어렵고 보조장비를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 구석구석 고개를 들이민 상태로 수작업을 해야 해요. 힘쓸 일도 많아 체력적으로 힘들고, 손에 늘 기름때를 묻혀야 해요. 몸이 고되고 심지어 다치는 분들도 많아요.” 그는 “항공정비라고 하면 대상이 항공기라는 점 때문에 좋은 직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청소년들이 덤벼들었다가 이내 실망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모습도 많이 본다”며 “항공정비 직업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설명해줄 필요가 있어서 그런다”고 말했다.
― 어떤 계기로 항공정비사가 됐나?
“중학교 다닐 때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며 처음 비행기를 탔다. 엄청 신기하고 흥분됐다. 그때부터 항공정비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항공정비사에 대한 정보가 없어 고등학교는 일반고로 진학했지만, 항공정비사 꿈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대신 2년 과정의 항공정비 직업학교로 진학했다. 그곳에서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땄다. 진에어에 입사했지만 정비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정비를 보조하는 자리로 배치됐다. 캠스가 항공정비사 공개채용을 한다고 하길래 지원서를 냈다. 2018년 9월1일 캠스 공채 1기로 입사했다.”
― 왜 조종사를 꿈꾸지 않고 왜 정비사가 될 생각을 했나?
“아버지가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셨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모습을 보며 기계에 관심이 많았고, 아버지처럼 작업복 입고 기계 만지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무엇보다 항공기에 대해 잘 알려면 조종사보다는 정비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공정비 일을 하고 싶어 군에 입대할 생각을 했었는데, 언니 반대가 심해 못했다.” 공군·육군 등 각 군은 운용 중인 전투기와 헬기 등을 자체 정비하고 있다. 각 군별로 항공기 정비 조직이 따로 있다. 김씨는 통화 중에 군에서처럼 말을 ‘다·나·까’로 끝맺을 때가 많았는데 “군에 입대하려고 연습한 게 습관이 됐다”고 했다.
― 정부가 2030년까지 국내 항공정비 시장을 5조원으로 키우고 일자리 2만3천개를 창출하는 내용의 ‘항공엠아르오(MRO)산업 육성 방안’을 내놨다. 항공정비사가 되는 길을 안내해 달라.
“항공정비 기술을 배우는 길은 다양하다. 나처럼 항공정비 직업학교에 가서 배울 수도 있고, 항공정비 기술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고등학교와 전문대학도 많다. 항공정비 보직으로 군에 입대해 기술을 배우고 경력을 쌓을 수도 있다. 기술을 배워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따면 항공정비사로 취직할 수 있다. 한가지 더, 항공정비 일을 잘 하려면 영어도 잘 해야 한다. 항공정비 안내서 등이 모두 영어로 돼 있는데다 제작사 기술진과 대화도 영어로 한다. 그래서 항공정비사 채용 때 토익점수 등으로 영어 실력을 평가한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특채하기도 한다. 항공정비사들을 보조하는 일을 맡는다. 보조 정비사로 일하며 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딸 수도 있다.”
― 항공정비사의 급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나나 우리 회사 급여 수준을 밝힐 수는 없고, 이전에 근무했던 항공사 쪽의 경우 신입사원 입사 3년차 항공정비사 월 급여가 300~400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대한항공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항공정비사 급여가 같은 연배의 대졸 사무직보다 30% 가량 높다.
― 캠스 항공정비사 중 여성은 혼자인데, 여성 비중이 낮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그동안 항공정비 일이 도제식으로 이어져온데다가 군 경력자들이 많다 보니 남성 정비사 중심이 됐다. 체력적으로 힘든데다 위험하고 시끄럽고, 때로는 지저분한 환경도 감수해야 해 여성 정비사와 함께 일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그렇다고 여성이 못할 일도 아니다. 나도 여성이 항공정비 일에 도전하는 것을 적극 추천하지도 않지만, 기계 만지는 일을 좋아하면서 항공기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면 도전해보라고 말해준다.”
지난 3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서비스 민항기 정비동서 김지현 정비사가 보잉737 항공기를 정비하고 있다.
― 유능한 항공정비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항공정비사 자격증 외에 항공기 기종별 인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고 하던데.
“국가 인증 자격증은 항공정비사 뿐이다. 기종별 인증은 ‘레이팅’(기종한정)이라고 해서 회사가 기종별 교육과정을 마친 정비사를 인증해주는 것이다. 레이팅 인증을 받아야, 해당 기종 항공기 정비 관련 문서에 책임자로 서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레이팅 인증이 쌓일수록 항공정비사로서의 권위와 실력을 인정받고, 대우도 높아진다.”
― 앞으로 계획은? 혹시 항공정비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
“최고 실력을 갖춘 항공정비사가 되고 싶다. 휴가 중이거나 퇴근 뒤에도 ‘김지현 정비사가 아니면 안될 것 같으니 빨리 와줘’라고 부름을 받아 달려나가는 모습을 상상한다.(웃음) 다른 일? 회사는 옮길 수 있어도, 항공정비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
― 미국과 유럽의 항공기 제작사 운영 정비업체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은? 대우도 좋고, 기술을 더 배울 기회도 많을텐데.
“항공정비사로서 나는 배워야 할 게 많다. 미국·유럽 항공정비 업체들은 메카닉(현장 작업)과 엔지니어(사무실에서 기술지원)가 분리돼 있고, 완전히 다른 직군으로 운영된다. 유능한 항공정비사가 되려면 양 쪽 일을 다 배워야 하는데, 그 쪽에선 오가며 일해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항공정비업체들은 둘을 분명하게 구분짓지 않아 기술과 일을 배우기에는 더 유리하다고 본다.”
― 기자인 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게시물에 틀린 글자나 잘못된 표현이 있으면 정정해놓는 버릇이 있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항공정비사는 비행기 탈 때 기분이 좀 다를 것 같은데.
“(웃음) 맞다. 나도 모르게 엔진 소리가 경쾌한지, 잡음은 없는지 등에 귀를 기울이고, 기체에 흠집이나 벌어진 부분은 없는지를 살피게 되더라. 기류를 만나거나 이·착륙 때 진동은 느껴지지 않는지도 신경을 쓴다. 직업병이지. 어쩌다 내가 정비한 항공기를 탔을 때는 뿌듯함과 자부심도 느낀다. 그 느낌으로 힘을 얻고, 정비 때 사소한 것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김씨는 “현재 하고 있는 제주항공 보잉737 기종 정비가 추석 연휴 직전 마무리된다. 올 추석은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통화를 끝냈다.
글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사진 한국항공서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