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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너도나도 장밋빛…전기차 배터리 거품 우려

등록 2021-11-09 04:59수정 2021-11-09 19:17

차세대 배터리 개발회사 줄이어
투자금 몰리지만 기술력 검증은 글쎄
미 배터리 스타트업 SES의 누리집 갈무리
미 배터리 스타트업 SES의 누리집 갈무리

“상당한 의구심이 듭니다.”

국내 배터리 전문가인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한겨레> 기자와 대화하던 중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일 미국 스타트업(신생 기업) ‘SES’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를 소개하는 온라인 행사를 가진 직후다.

SES는 이날 직접 개발한 하이브리드 리튬메탈 배터리 완성품과 성능 실험 결과 등을 공개했다. 미국 증시 상장을 앞둔 이 회사는 현대차그룹·에스케이(SK)·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 대기업이 투자해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다. ‘한 번에 700km 주행’, ‘판 바꾼다’, ‘꿈의 배터리 상용화’ 같은 제목의 보도도 쏟아졌다.

대형 배터리 제조사 삼성에스디아이(SDI) 출신인 조 교수가 문제 삼는 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SES의 배터리 테스트 환경이 허술했다.

■SES에 흥분하기엔… SES 쪽은 이날 스마트폰에 들어갈 만한 소형 전지의 에너지 밀도가 영상 40도∼영하 30도에서도 일정하게 유지됨을 증명하는 그래프를 보여줬다. 조 교수는 “리튬 메탈(금속)은 녹는점이 낮아서 온도가 오르면 폭발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60도 이상에서의 성능 실험이 필요하다”며 “배터리 안전성 검증 때 전기차에 들어가는 대형 전지를 쓰지 않고 폭발 가능성이 낮은 스마트폰용 배터리를 사용한 것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외부 검증의 신뢰도에도 물음표를 던졌다. 차차오 후 SES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외부 기관(써드 파티)의 테스트에 기반한 데이터”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검증 기관이 어딘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조 교수는 “한국의 배터리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국내 배터리 3사를 제3자 평가 주체로 정해 검증받으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국내 대형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도 “배터리 음극(-)에 리튬금속을 넣는 리튬메탈 배터리는 우리도 과거에 이미 검토했으나 위험성이 커서 접었던 기술”이라며 “연구진들도 SES 쪽 발표만 봐선 실제 구현이 가능한 건지 잘 모른다고 했다”고 전했다.

전기차 시장 급성장에 따라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도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사’라는 간판을 내건 외국의 신생 회사뿐 아니라 국내 상장사도 ‘관련주’라는 꼬리표만 붙으면 주가가 들썩인다. 그러나 기술 개발과 상용화 가능성이 미지수인 만큼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SES만 해도 이날 행사 내용을 요약한 보도자료의 끝부분에 “자료에 포함된 모든 진술은 경영진의 기대치에 대한 다양한 가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며 “미래를 예측한 진술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회사 쪽이 제시한 청사진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얘기다.

■배터리 테마에 경고음 부쩍 장밋빛 전망만 믿었다가 실제 손실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사 미국 퀀텀스케이프는 지난해 말까지 주당 100달러를 웃돌던 주가가 현재 30달러 선으로 3분의 1 토막 났다. 주가가 내리면 돈을 버는 공매도 전문 투자가 스콜피온 캐피털이 지난 4월 전직 직원 인터뷰 등을 통해 “퀀텀스케이프가 테라노스(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을 저지른 바이오 회사)를 넘어서는 사기 기업”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아서다. 이 회사는 한때 시가총액이 미국 2위 자동차 회사 포드를 넘어섰으나 기술력이 의심받으며 예전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 출신이 설립한 배터리 제조사 로미오파워도 회사의 주요 정보를 감추고 매출 전망을 부풀렸다는 이유로 올해 상반기 집단 소송에 휘말린 바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증권가 등 자본시장의 장밋빛 전망과 대기업 선행 투자만 믿고 신생 기업에 선뜻 돈을 넣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배터리 분야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기업과 투자자 간 정보의 비대칭 문제도 있는 만큼 비전문가들의 견해를 맹신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투자 거품이 한풀 꺾인 국내 바이오 업종이 비슷한 사례다.

국내 대형 배터리업체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투자 열기가 과열되며 요샌 투자은행(IB) 쪽에서 어느 배터리 회사에 투자하면 좋을지 알려달라는 연락도 부쩍 많이 온다”고 귀띔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학계 연구자는 “자체 배터리 기술력이 있는 대기업도 상의하달식(탑다운) 지배 구조에 따라 철두철미한 검증 없이 신생 기업에 선뜻 투자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 SES쪽 입장

<한겨레> 보도 이후 SES 쪽은 9일 “배터리 성능을 영상 40도에서 테스트한 건 OEM(주문 업체)이 요청해 그에 맞춰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소형 배터리를 테스트에 사용한 건 테스트 당시엔 전기차용 대형 배터리를 개발 중이었기 때문”이라며 “전기차 배터리는 내년쯤 제3자(써드 파티) 테스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SES는 “이번에 공개한 소형 배터리 테스트 결과는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설리 멩(Shirley Meng) 교수와 스팩 회사인 아이반호 쪽에서 정한 엑스포넌트(Exponent), 이클립스 에너지(Eclipse Energy)의 검증을 받았다”며 “제3자 평가 보고서를 회사 인터넷 누리집 ‘투자자 자원’ 항목에 게시했다”고 전했다. 아이반호캐피털 애퀴지션은 비상장 기업인 SES를 인수 합병하는 방식으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우회 상장을 추진 중인 페이퍼 컴퍼니다. 

 다만 SES 쪽은 지난 4일 공개한 소형 배터리의 성능 테스트 조건을 정한 OEM 업체가 어디인지와 이 배터리의 영상 60도에서의 구동 여부 등은 설명하지 않았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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