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선박에 화물이 실리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운사 공동행위 인가 여부? “받은 적 없음” (공정위 주장) - “해운법상 허용” (해운사 주장)
해운사 공동행위 입·탈퇴 제한 여부? “제한” - “제한하지 않았음”
공동행위 시 해양수산부 신고 여부? “122회 신고 불철저” - “신고대상 아님”
결론은? “부당한 공동행위” - “적법한 공동행위”
한국해운협회가 지난 3일 공동행위(짬짜미)에 대한 공정위 제재를 앞두고 있는 해운사들을 대신해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배포한 자료를 요약한 내용이다. 주요 항목별로 ‘공정위 심사보고서 내용’과 해운사 쪽 입장을 맞세웠다. 제재를 받는 쪽이 공정위 심사보고서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고, 양 쪽 결론이 정반대인 게 이채롭다. 해운법 개정안 통과 시 영향에 대해서도 “선사들의 불법적인 답합 조장. 물류비 부담 가중” “사실 왜곡. 공동행위로 운임상승 불가”라고 평가했다.
기자간담회 중에 ‘해운사 쪽 주장대로라면, 공정위의 해운사 담합행위 조사가 법 조항을 완전히 잘못 해석했거나 법을 무시하는 것이자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라는 것 아니냐? 언론플레이를 할 게 아니라 공정위 담당자들을 고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김영무 해운협회 부회장은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그렇고…, 하여간 공정위가 해운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손을 댄 것은 분명하고…”라고 얼버무렸다. 그는 이어 “어쨋건 액수와 상관없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소송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일반적으로 공정위 불공정행위 제재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은 과징금 액수를 낮추거나 검찰 고발을 막는 등 제재 수위를 낮추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해운사들의 대응은 ‘막무가내’ 쪽에 가깝다. 이미 공정위가 사실조사와 당사자 의견조사 절차까지 마쳐 전원회의 심결을 앞둔 상황인데도 여전히 “조사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5월 동남아 노선에서 운임을 담합한 혐의로 국내외 해운사 23곳을 제재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했고, 해운사들은 “공동행위는 해운법 29조에 따른 면책조항”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한겨레>는 이날 기자간담회 이후 해운협회와 국내 해운업체 관계자들을 따로 만나 ‘공정위 과징금 부과 여부에 대해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고 질문을 이어갔다. 김영무 부회장은 “액수와 상관없이 과징금이 부과되면 시정명령이 따라붙을 것 아니냐. 과징금에 예민한 게 아니라 시정명령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한 뒤에는 시정명령 이행 여부가 감시될 것이고, 해운사들이 공동행위를 또 하는 것으로 확인되면 시정명령 위반으로 가중 처벌될 것이고…. 사실 더 큰 문제는 공정위 시정명령이 나오면, 국내 중소·중견 해운사들의 주력시장인 일~한~중~동남아 노선을 전부 중국 해운사 쪽에 내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 해운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물동량 증가와 운임 상승으로 해운사들의 실적인 전례없이 좋아졌는데도 해운사들의 주가가 오르지 못하고 있다. 에스엠(SM)상선은 상장이 좌절되기까지 했다. 공정위 제재 여파와 코로나19 이후 상황 등의 불확실성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과 해운사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내 중소·중견 해운사들은 그동안 ‘공동행위’ 덕에 한~중 등 동남아 노선 선복량의 절반을 차지해올 수 있었다. 중국 해운사들의 반발에도, 우리나라 정부와 해운사들의 노력으로 공동행위 체제가 유지됐고, 그 덕에 국내 중소·중견 해운사들이 살아남을 있었다. 김 부회장은 “한·중해운협의회에서 한국과 중국 해운사들의 선복량 비율을 조율하는데, 가격경쟁력이 단연 앞서는 중국 해운사들은 공동행위에 반발한다”며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하면, 중국 해운사들이 이를 빌미로 공동행위 구조를 깨자고 나올 게 뻔하다. 그러면 인천, 군산, 목포, 부산 등 우리나라 주요 항만마다 중국 배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건비 등 가격경쟁력에서 우리나라 해운사들은 중국 해운사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한국 해운사들이 공정위 제재와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해운사 간 입장 차이가 큰 것도 사실이다. 대형 원양 해운사 에이치엠엠(HMM)은 “미주와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이 주력이라 공정위 제재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옛 한진해운의 인력과 해운자산을 승계해 출범한 에스엠(SM)상선 관계자도 “미주 서안 노선이 주력이고, 향후 계획도 미주 동안 등 장거리 노선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근거리 노선 비중은 크지 않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해운사 중 장금상선과 고려해운 등 동남아 노선 비중이 큰 해운사들은 큰 타격이 예상된다. 상대가 공정위다 보니 직접 나서기는 어려워 협회를 앞세워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해운협회가 ‘큰 소리’를 내는 배경에는 청와대의 중재를 주문하는 속내도 있다. 한 해운업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치적 가운데 하나로 해운업 재건을 꼽을 수 있다. 청와대가 이를 성과로 앞세우기 위해 공정위 제재 건을 무마시켜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결과를 존중하면서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을 피하는 방안으로 ‘동의의결’을 신청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동의의결이란 제재 대상 사업자 스스로 문제의 원상회복 또는 소비자나 거래 상대방의 피해구제 방안을 제시하면, 공정위가 타당성을 판단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업계의 동의의결 신청 구상은 현실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사건과 같은 짬짜미 행위는 동의의결 제도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