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케이티(KT) 대표가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금 사건’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75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같은 문제로 재판을 앞둔 박종욱 대표(경영기획부문장)는 사내이사 재선임 투표를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회사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구현모 대표는 31일 서울 서초구 케이티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증권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에 따른 감사 여부와 향후 계획을 묻는 주주의 질문에 “(SEC의 과징금 부과가) 회사 평판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을 알고 있다. 최고경영자로서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주주들의 심려를 끼쳐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구 대표의 발언은 지난 2월 증권거래위원회의 처분 결정 이후 케이티 경영진의 첫 공식 사과다.
이어 구 대표는 증권거래위원회와 과징금 납부를 합의한 배경에 대해 “2009년부터 상품권 구매 등 제3자 지급 건에 대한 내부 회계 관리 기준을 갖추고 있지 않아 회계 규정을 위반했다는 내용에 대해 회사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SEC와) 합의했다”며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련 비용이 증가하고 향후 제재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구 대표는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위원회를 설치하고 외부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영입해 회사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기부금 컴플라이언스 검증을 받고 있으며, 임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사내이사 재선임안 의결이 예정됐던 박종욱 대표는 주총 직전 일신상의 이유로 이사직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회사에 밝혔다. 케이티는 지난 1월 신설한 최고안전보건총괄(CSO)에 박 대표를 선임하며 구현모 단독 대표 체제에서 구현모·박종욱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이날 사퇴로 박 대표는 안전보건총괄 업무에서 물러나지만, 경영기획부문장(사장) 자리는 유지하게 된다.
박 대표의 사퇴는 케이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그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한 것과 무관치 않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12.68%의 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전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박 대표에 대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의 이력이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재선임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 대표는 지난 2014~2017년 회삿돈으로 여야 국회의원에게 수백만원씩 후원금을 나눠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검찰의 약식 기소로 올해 1월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에 불복해 현재 정식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한편, 케이티 주총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성명을 내어 “비록 부적격 이사 선임이 저지되긴 했으나 비위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부패의 고리는 지속될 것”이라며 회사가 내부 감사 실시를 통해 쪼개기 후원금 사건의 책임소재를 규명할 것을 촉구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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