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습. 정용일 기자
현대중공업에서 25년간 용접 일을 한 김영배씨는 2016년 육상플랜트 건설 현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조선소에서 일할 때보다 더 적은 시간 일하고 난이도도 낮지만, 매달 가져가는 돈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김씨는 조선소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조선소에서 일할 땐 잔업, 주말 특근을 해도 월 300만∼350만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덜 일하면서도 많게는 600만원까지 받는다”고 말했다.
1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긴 불황 끝에 맞은 조선업 호황이 인력난에 발목 잡힐까 조선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로 수주한 선박 물량이 이르면 하반기부터 건조에 들어가는데, 6∼7년 전 대규모 구조조정 때 조선업을 떠난 숙련공들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선업 하청 숙련공들이다.
2015년 말 13만3346명에 달했던 조선업 하청인력은 2022년 2월 기준 5만1854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김씨도 이때 조선소를 떠났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는 현장 인력이 9500여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다.
떠난 인력이 돌아오길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하고 고된 업무환경 대비 낮은 임금이다. 한 때 조선업 임금은 제조업 평균의 1.5배를 웃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하루 9시간씩 일하는 현대중공업 하청지회 오세일 부지회장은 지난달 266만원을 받았다. 그는 “작년 말에 시급이 400∼600원 올라서 이제 1만원이 됐다. 시급이 가장 높은 조장도 이제 1만800원이 됐다”고 말했다. 18년간 조선소에서 일한 장은석씨도 하루 9시간을 일하고 월 250만∼300만원을 받는다. 적을 때는 200만원도 받는다. 장씨는 “편의점 알바도 최저시급을 받는데, 별 차이가 없다”며 “조선업은 노동 강도가 매우 세고 너무 위험한데, 이런 임금 체계로는 절대 다시 안 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통영 신아에스비(sb)조선소의 도크가 텅 비어있다. 김명진 기자
조선소를 떠난 인력들이 가장 많이 자리잡은 분야는 건설업이다. 조선소는 제조업보다 건축업에 가깝다. 쇠로 된 거대한 건축물(선박)을 ‘건설’하는 셈이다. 단순 제조업과의 임금 격차가 거의 사라진 마당에 고된 업무로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40년째 조선업 하청업체를 운영 중인 황우연 우정이앤지 대표는 “건설 쪽 임률(시간당임금)이 조선소 임률보다 높다 보니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협력사들이 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조선소 임금이 육상 건설현장 임금의 80%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물론 하청 단가를 쉽게 올리지 못하는 조선사 쪽 사정도 있다. 그동안 수년째 적자를 이어온 탓에 현금흐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해 비싼 가격에 수주한 선박 물량들이 아직 본격적인 건조에 들어가지 않았다. 조선사들은 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헤비테일’ 계약을 주로 맺는다. 수주 금액을 모두 받아내는 데는 1∼2년이 소요된다. 선박 제조에 쓰이는 후판(두꺼운 철판)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도 조선사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박사는 “조선사들이 후판 가격 상승에 따라 지난해 상반기 충당금으로 적자를 잔뜩 쌓아놨다”며 “그 돈이 올해 실질적으로 나간다. 인건비를 많이 올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년째 조선업에 몸담아온 업계 관계자는 “원청(조선사)에서도 하청업체나, 부품사 등 조선업 생태계가 살아남아 있어야 본인들도 잘 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도 “하청 단가를 올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사들은 ‘주 52시간제 적용 유예’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간 조선업 노동자는 저녁 잔업과 주말 특근으로 낮은 기본급을 보전해왔다. 익명을 원한 중소 조선사 관계자는 <한겨레>에 “과거에는 물량이 넘쳐서 야간, 주말 특근을 하며 월급을 굉장히 많이 가져갔는데, 추가 근무를 못하다 보니 다른 직종에 비해 고임금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업은 이미 주 52시간을 안 넘기고 일하고 있다”며 “기존 인력을 활용해 더 일하게 해달라는 건 단기 효과는 보겠지만, 중장기적 대책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청년들이 일하러 오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업계에서는 조선사들이 손실을 감내하면서 하청 단가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그래도 넘어야 할 벽이 남아있다. 구조조정에 대한 트라우마다. 최근 국내 조선사들의 대량 수주 상황이 반짝 호황에 그칠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다시 조선소로 돌아와도 2∼3년 뒤 새 일자리를 찾는 일을 반복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선산업 담당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조선업은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이 있지만, 조선산업이 지속해서 잘 유지될 거란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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