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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이재용 사면을 위해 정부와 삼성이 내놓아야 할 것은?

등록 2022-08-05 07:00수정 2022-08-11 15:3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사면·복권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규모 생계형 민생사범 구제를 함께 고려 중이라는 얘기도 들리며, 재벌 총수 특혜에 대한 반감을 의식한 모양새 갖추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공정과 상식’을 남달리 주장하며 출범한 정부인만큼, 재벌 총수들을 사면·복권시키려면 그 필요성과 정당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윤석열의 공정 정부는 광복절을 앞두고 이재용 부회장 등 재벌 총수들을 사면할 필요성이 있다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 부회장 등의 사면과 관련해 “처벌이 이뤄졌고 괴로움도 충분히 겪었다고 판단되면 사면하는 것이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국민 눈높이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제적 이유를 내걸어 사면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 사면을 확실시하는 분위기다. 다만, 삼성 쪽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기’ 식으로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말기에도 사면설이 돌았다. 기대하는 마음이야 있을 수 있지만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디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해온 ‘공정’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당선 인사에서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해 86억여원의 회삿돈을 횡령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전달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형기 60%를 마친 지난해 8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당시 외신도 “재벌에 대한 특혜의 역사를 연장시켰다”(에이피(AP)통신)고 평가했다. 여기에 사면까지 이뤄지면 연속해서 특혜를 받는 꼴이 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노조 파업이 장기화하자 “법치주의는 확립돼야 한다” 등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사면은 대통령 고유의 통치 행위이지만, 만약 이 부회장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킨다면, 재판을 받고 있는 처지에서 사면을 받게 되는 것이라 전례가 없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분식회계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사법권 침해’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이런 사정에도 정부가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려면 타당한 이유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사면을 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면서도 “이 부회장의 족쇄를 풀어준다면,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공정과 왜 배치되지 않는지 혹은 배치되지만 왜 불가피했는지 등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 윤석열의 시장 경제 정부는 이 부회장 사면 필요성으로 경제 회복을 앞세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국회에서 “국민 통합 차원이나 경제 활력 회복 차원에서 경제인 사면을 적극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재계도 같은 주장을 편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제가 어렵다 보니까 (경제인을) 좀 더 풀어줘야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사면 필요성을 밝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도 지난 6월2일 추경호 부총리를 만나 같은 취지로 사면을 건의했다.

문제는 재벌 총수를 경제 활동 제약에서 풀어준다고 투자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외국계 자산운용 관계자는 “경제를 이유로 재벌 총수를 사면해야 한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나오던 것이라 뉴스도 아닌 상황”이라며 “이 부회장은 구속 상태도 아닌 상황인데 투자나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경제를 이유로 이 부회장 등을 사면하려면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한 셈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총수 사면이 경제 활성화와 특별한 인과관계가 있는지 검증된 바 없다”며 “총수들이 주요 투자를 결정한다는 점을 강조해 사면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지만, 거꾸로 법을 지키면서 기업활동을 할 필요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데도 사면을 단행하려면, 정부가 앞으로 이같은 사면은 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시장 질서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 주주·국민의 피해 회복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추진됐다. 이 부회장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가치는 높게, 삼성물산은 낮게 평가받았다. 불공정한 합병비율은 옛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을 포함한 주주들에게 피해를 안겼다. 참여연대는 2019년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국민연금이 5천억∼6천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2020년 5월, 4세 경영 종식과 무노조 경영 중단 등의 내용을 담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 목적의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 회복에 대한 입장은 없었다. 앞서 이 부회장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은 2006년 불법 대선자금 제공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배정 등에 대한 사과문을 내면서 8천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차명계좌와 관련해서는 “실명으로 전환해 세금 납부 뒤 남은 금액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밝혔다.

손창완 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경제가 어려우니 사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에 앞서 ‘국민의 노후자금’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연금과 옛 삼성물산 주주들이 입은 피해를 회복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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