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3년 4개월 만에 장중 1340원선까지 넘어선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전광판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급락)하며 국내 산업계 전반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 쪽에서는 중대 경영 변수가 급변동한 꼴로, 위험(리스크) 관리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이미 고공행진 중인 수입 원부자재 가격을 추가로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꼽는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 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으로 이어지며 수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하지만, 이번에는 중국 위안, 일본 엔, 유로화 모두 미 달러화에 견줘 약세를 보이면서 이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홍성욱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2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금의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은 미국 금리 상승에 따른 달러화 강세 때문이고, 위안·엔·유로화도 다 같은 영향을 받고 있다”며 “우리 경제만 안 좋아서 원화 가치가 떨어진 예전의 환율 급등 때와는 달리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이 곧 수출 호조로 이어질 가격경쟁력 확보를 뜻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업종별로는 항공기 임대(렌트) 대금을 달러로 지급하고 외화부채를 많이 지고 있는 항공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 보인다. 대한항공은 올해 상반기 순 외화부채 35억달러를 기준으로,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350억원의 외화 평가 손실을 본다. 한 저비용항공사 관계자는 “비행기 렌트 등 외화 결제가 많아 부담스럽다. 환헤지 상품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하려 하지만 (환율이 오른 만큼) 단기 손실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자업계 쪽도 환율 급등을 호재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요 제품인 반도체가 달러로 거래되는 만큼 실적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나 환율 급변동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 등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엘지전자 관계자 역시 “인플레이션 우려로 소비자의 실질소득이 줄고 구매력도 떨어지는 상황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쪽도 비슷한 반응이다. 엘지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달러 강세 시기는 수출 증가 효과를 거뒀지만, 최근엔 원자재 가격도 같이 올라 과거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는 완성차 회사냐, 부품업체냐에 따라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이해득실이 갈린다. 수출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 상승에 따라 수익이 늘고 있다. 환율 상승 효과 덕에 지난 7월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에 견줘 23% 늘었다. 반면,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부품사들은 원-달러 환율이 오를수록 손해가 커진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환율이 오르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큰 수익을 내고 있지만, 원자재와 부품 등을 수입하는 부품사들은 많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등 철강업체들은 국외에서 철강석 등 원료를 수입하고 철강 제품을 수출한다. 환율 변동에 따른 비용 증가분과 수출에 따른 수익 증가분이 유사하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계는 1억톤(t) 이상의 철광석 원료를 수입하면서도 수출량은 작년 기준 세계 4위다. 원료비 부담이 높아지는 만큼 수출로 이득을 보기 때문에 환율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국외 매출 비중이 높은 게임·웹툰 등 콘텐츠 기업들은 고환율 기조를 반기는 분위기다. 국외 매출 비중이 80%를 넘는 게임업체 크래프톤과 펄어비스 등은 매출을 원화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환차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북미·유럽·일본 등의 시장에서 웹툰 플랫폼 등을 운영 중인 네이버·카카오 등도 환율 상승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카카오 관계자는 “게임과 웹툰 등 국외 매출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달러 강세 수혜까지 있다면 하반기 더 나은 실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산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