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네모이 마린의 로터세일이 설치된 모습. 아네모이 마린 누리집
커브볼은 변화구 가운데 가장 큰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지는 구종입니다. 보통 야구공을 던지면 날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회전하며 궤적을 그립니다. ‘백 스핀’(Back Spin)입니다. 반면, 커브볼의 회전 방향은 그 반대죠. 투수는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공의 앞쪽을 긁으면서 커브볼을 던집니다. 손을 떠난 공의 회전 방향은 공이 날아가는 방향과 일치합니다. 이를 ‘탑 스핀’(Top Spin)이라 부릅니다. 이렇게 던지는 이유는 포수를 향해 날아가는 공이 아래로 떨어지는 폭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커브볼은 ‘마그누스 효과’로 인해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변화구입니다. 마그누스 효과는 1852년 독일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하인리히 마그누스가 포탄의 궤도를 연구하면서 등장한 이론입니다. 공이나 원기둥이 회전하면서 유체(액체 또는 기체) 속을 지나갈 때 회전축과 진행 방향으로부터 수직으로 힘을 받는 현상을 말합니다. 설명이 조금 어렵습니다.
다시 커브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포수를 향해 날아가는 커브볼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갑니다. 공이 멈춘 채 회전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정지한 상태에서 회전하는 공에 바람이 불어오는 상황이 되죠. 포수 쪽으로 회전하는 공의 윗부분은, 공의 회전 방향과 바람의 방향이 다릅니다. 회전하는 공의 에너지와 바람이 부딪히면서 압력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투수 쪽으로 회전하는 공의 아랫부분은 공의 회전 방향과 바람의 방향이 일치합니다.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압력이 낮아지죠. 힘은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작용합니다. 공을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힘이 작용하는 것이죠. 커브볼이 큰 낙차로 뚝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커브볼의 위쪽은 압력이 높고 아래쪽은 압력이 낮아 공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베이스볼젠 누리집
커브볼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선박의 풍력보조 추진장치인 ‘로터세일’(Rotor Sail)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선박에 위에 거대한 기둥 여러 개를 세우고, 바람이 불 때 회전시키면 보조 추진력이 발생해 선박 연료 사용량을 줄여준다고 합니다.
원리는 커브볼에 적용되는 효과와 같습니다. 선박이 12시 방향으로 나아갈 때 바람이 3시 방향에서 불어오면, 로터세일을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시킵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과 로터세일의 회전 방향이 일치하는 선박 앞부분은 압력이 낮아집니다. 반대로 바람의 방향과 회전 방향이 엇갈리는 뒷부분은 압력이 높아지죠. 커브볼과 같이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힘이 작용해 선박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게 됩니다. 만약 9시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로터세일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같은 원리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로터세일은 역사가 깊습니다. 1924년 독일 발명가 안톤 플레트너가 처음 적용했죠. 선박 중앙에 두 개의 원기둥을 놓고 회전시켜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발명가의 단순 호기심이었고, 고효율의 화석연료 추진선이 있는데 굳이 로터세일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 자취를 감춥니다. 그러다 최근 탄소중립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다시 로터세일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해운업에도 곧 강력한 탄소중립 규제가 적용될 예정입니다. 각 나라가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 보급에 속도를 내고, 내연기관 차량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같습니다.
로터세일의 원리를 설명한 그림. 바람이 선박 왼쪽에서 불어올 때 로터세일을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면 선박의 추진을 보조하게 된다. 독일-네덜란드 해양 협력 기관 마리그린 보고서 갈무리.
해운업에 적용되는 각종 규정은 국제해사기구(IMO)가 정합니다. 2018년 4월 국제해사기구는 2050년까지 국제해운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특히 새로 건조하는 선박에만 적용하던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2023년 1월1일부터는 이미 운항 중인 선박에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당장 내년부터 내연기관 차량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겁니다. 선주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배출량 감축을 위해 선박의 속도를 줄이거나 연료절감 장치를 설치해야 하죠. 이런 이유로 로터세일이 주요 절감 장치로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겁니다.
외국 로터세일 회사들은 이미 상용화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영국 아네모이 마린(Anemoi Marine)·독일 에너콘(Enercon)·핀란드 노스파워(Norsepower)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아네모이 마린이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됩니다. 2025년까지 50척에 이르는 선박에 로터세일을 장착할 예정이죠. 국내에서도 최초 사례가 나왔습니다. 팬오션은 지난해 5월 초대형 광탄선 ‘시 조우샨호’(SEA ZHOUSHAN)호에 노스파워가 개발한 로터세일을 설치해 운영 중입니다.
1920년대 로터세일이 처음 적용된 선박의 모습. 위키피디아
이에 뒤질세라 국내 조선업계도 로터세일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29일 한국선급으로부터 독자 개발한 하이로터의 설계 인증을 받아 올해 하반기 실증을 거쳐 수주에 나설 계획입니다. 대우조선해양도 지난해 3월 노르웨이 디엔브이(DNV)선급으로부터 초대형 원유 운반선과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에 적용 가능한 ‘디에스엠이(DSME) 로터세일 시스템’의 기본 승인을 획득했습니다. 이어 이달 6일 디엔브이선급과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죠. 곧 국내 조선사가 개발한 로터세일을 적용한 선박을 볼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로터세일의 에너지 절감효과는 어느 정도일까요. 현대중공업이 개발 중인 로터세일인 하이로터는 최대 180rpm(분당 회전수)으로, 1초에 세 번 회전합니다. 육중한 기둥치고는 상당히 빠른 속도입니다. 선박 에너지 효율을 측정하는 항로의 풍력·풍향 데이터를 적용해 모의실험을 한 결과, 하이로터를 적용한 선박은 일반 선박과 비교해 6∼8%의 연료를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박윤기 현대중공업 수석연구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기둥 1개의 추력이 메인 엔진 추력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하이로터 등 최신기술이 적용된 로터세일은 선박에 장착된 센서로 풍속·풍향을 감지해 회전 방향과 회전수를 자동 조절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높인다”며 “선박 환경규제가 점점 강화되면서 줄여야 할 탄소배출량이 늘어나 로터세일을 찾는 선주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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