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엘지유플러스(LGU+) 본사 1층에서 민주유플러스노동조합이 “회사와 직원들에게 투자하지 않는 경영진은 각성하라”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지난해 경기 둔화 흐름 속에서도 실적 개선을 이룬 것에 대한 보상으로 두둑한 성과급을 지급하는 기업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일부 기업은 계열사·사업부별 차등 지급 문제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는 등 성과급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재벌의 총수 일가가 속한 계열사나 기업 내 특정 사업부문의 성과급이 왜 더 많냐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열심히 일한 직원을 보상·격려하기 위해 지급된 성과급이 ‘뜨거운 감자’로 전락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하소연까지 나온다.
엘엑스(LX)그룹은 이달 초 계열사별로 임직원들에게 성과급 규모를 통보했다. 엘엑스인터내셔널이 800%로 가장 많고, 엘엑스판토스와 세미콘은 각각 400%, 300%를 지급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영업이익이 149억원에 그친 엘엑스하우시스는 0%였다. 이런 상황에서 구본준 엘엑스그룹 회장과 아들 구형모 경영기획부문장(현 엘엑스엠디아이 부사장)이 속한 엘엑스홀딩스가 1000%를 지급했다는 소문이 돌며 논란이 일고 있다. 엘엑스홀딩스의 주 수익은 자회사 순이익이다. 계열사 직원들 사이에서 “계열사 지분 투자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총수 일가가 돈잔치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엘엑스홀딩스는 성과급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1000%에 이르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특별성과급을 계열사별로 다르게 지급해, 직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지난해 역대 최대실적을 낸 것을 고려해, 직원 모두에게 ‘400만원+주식’을 지급했다. 반면, 현대모비스·현대위아·현대트랜시스 등 계열사들은 300만원을 지급하는데 그쳤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별 실적을 고려했다”고 설명하지만, 덜 받은 계열사 직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 소속의 한 직원은 “계열사들이 적정 가격에 부품을 납품한 점도 현대차·기아 최대 실적에 기여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특별성과급을 차등지급하니, 직원들이 박탈감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 기업 안에서 부문간 실적에 따른 차등지급으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엘지(LG)전자는 흑자 전환에 성공한 전장사업본부 직원한테는 기본급의 550%를, 생활가전사업본부와 티브이(TV)사업본부 직원들에게는 각각 250∼300%, 100∼130%를 지급했다. 엘지전자의 한 직원은 “성과에 따라 받는다지만, 일부에선 계속 적자가 나던 부문이 목표치가 낮아 쉽게 달성할 수 있었는데도 더 많은 성과급을 받는데 대한 불만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씨제이(CJ)올리브영 역시 직무에 따라 본사 소속 상품기획(MD) 직군은 연봉의 최대 160%까지 받았지만, 다른 사업부는 20~40% 수준에 그치며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전년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엘지유플러스(LGU+)는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지만, 성과급은 기본급의 250%로 전년(450%)보다 오히려 줄었다. 직원들의 항의에 엘지유플러스는 “플랫폼 신사업은 가시적 성과가 확인되기까지 3~5년이 걸린다”며 “투자를 적극 집행해 탁월한 성과로 이어진다면, 다른 회사만큼 큰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직원들을 달랬다.
에스케이(SK)그룹은 계열사별로 성과급 산정 기준을 계속 고치고 있다. 이미 한차례 홍역을 겪은 에스케이하이닉스는 2021년에는 경제적부가가치(EVA)로 산정하던 성과급을 영업이익 10%로 바꿨다. 올해는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경제적부가가치 대신 환경·사회적책무·지배구조(ESG) 성과를 반영한 새 성과급 제도를 도입했다. 탄소 배출량을 목표치보다 많이 낮추면 성과급을 주는 방식 등으로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에스케이에너지의 경우, 새 제도 적용에 따라 지난해 실적이 전년보다 더 좋아졌는데도 성과급은 기본급 최대치인 100%가 아닌 80%로 책정돼 불만이 나온다.
김유찬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갈수록 성과급을 둘러싼 논란이 커져가고 있어, 내부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예측가능하도록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한편, 성과급을 받을 엄두조차 못내고 있는 곳에선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 341개 기업 가운데 142개(46.1%) 업체 직원들은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 한 중견기업 직원은 “직원들이 노력한만큼 성과급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못받는 입장에선 다른 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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