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폐지가 5초 만에 새 종이로 부활…“물컵 1잔에 70% 재생”

첨단 재생 장비 ‘페이퍼랩’
엡손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공개
큰 크기·비싼 가격 대중화 걸림돌

엡손이 24일 일본 나가노현의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종이 재생 장비인 ‘페이퍼랩’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미 사용한 종이를 분해한 섬유화 물질로 이후 결합 공정을 거쳐 새 종이로 탄생한다. 옥기원 기자 [e-mail]

헌 종이를 새 종이로 만들어주는 종이 재생 기술의 대중화가 페이퍼리스(종이 안 쓰기)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일상생활에서 종이 사용을 멈출 수 없다면 사용한 종이를 잘 재활용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을 보호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린트 제조기업 세이코엡손은 24일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에 있는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내년 한국에 출시 예정인 첨단 종이 재생 장비 ‘페이퍼랩’을 공개했다. 오가와 야스노리 엡손 대표는 “환경과 공존할 제품을 만든다는 기업 철학에 따라 개발한 페이퍼랩으로 환경 보호와 문서 보안 문제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앱손이 24일 일본 나가노현의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종이 재생 장비인 페이퍼랩을 공개했다. 옥기원 기자 [e-mail]

페이퍼랩 1세대 제품에선 5초에 1장꼴로 재생 종이(A4 기준)을 생산하고 있었다. 공정을 보면, 먼저 사용한 에이(A)4 용지 등을 기계에 넣어 파쇄와 섬유화 작업을 진행한다. 약간의 수분과 화학제를 사용해 종이 원료가 될 솜뭉치 같은 섬유를 만드는 게 핵심 기술이다. 이후 섬유를 압축하는 결합 과정과 종이의 밀도와 크기, 색깔 등을 정하는 성형 공정을 거쳐 재생 용지가 생산된다.

존 모로후시 엡손 마케팅 매니저는 “헌 종이 100장을 넣으면 새 종이 70장을 만들 수 있다. 한 시간 기준 6.5㎾의 전력을 사용해 새 에이4 용지를 최대 720장을 생산한다. 기존 폐지 재생 설비는 잉크 제거를 위해 많은 양의 물을 썼지만, 페이퍼랩은 종이컵 한 컵 분량의 물만 사용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재생 용지는 약간 노란빛이 돌았지만, 새 종이와 비교해 질감이나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제 일본 엡손 직원들은 명함과 설명 자료 등을 만드는데 페이퍼랩 재생용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너무 큰 크기와 비싼 가격은 대중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가로 2.8m·세로 1.4ｍ, 1700㎏ 무게로 2인승 스포츠카와 맞먹는 규모다. 가격도 약 2500만엔(약 2억4천만원)으로 고가인 탓에 도쿄해상과 산요, 롯데 등 일부 대기업 70여곳에서만 페이퍼랩을 사용 중이다. 후지이 시게오 한국엡손 대표는 “내년 출시 예정인 2세대 제품은 기존보다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가격도 낮춰 문서 보안이 중요한 금융권과 대기업 등에 공급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엡손 히로오카 사무소 직원들이 24일 대형 섬유 프린터 ‘모나리자’에서 천을 인쇄하는 공정을 소개하고 있다. 옥기원 기자 [e-mail]

엡손은 이날 다양한 천 소재에 색과 무늬를 인쇄할 수 있는 대형 섬유 프린터 ‘모나리자’도 선보였다. 염료(수성) 가공보다 친환경적인 안료잉크(유성)를 사용한 공정으로 스팀 및 세탁 처리가 필요 없어 물 오염과 폐기물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엡손 관계자는 “기존 천 염색은 동남아 지역에서 염색과 세탁을 반복하는 수작업으로 최대 60일이 소요됐지만, 디지털 프린팅 방식을 활용하면 3~14일밖에 걸리지 않아 노동과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가노/옥기원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