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은 시장이지만 국가별 시장경제의 형태는 천차만별입니다. 한국은 독특한 구조를 가진 재벌이라는 대기업집단이 시장을 지배합니다. 이는 단순히 대기업이 중요하냐 중소기업이 중요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벌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살펴봅니다.
지난 6월20일 씨제이 시지브이(CJ CGV)는 채무상환과 운영자금 확보를 주요 목적으로 자본확충 계획을 공시했다.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을 통해 57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시행하는 게 뼈대다. 이 계획에 모회사인 씨제이(CJ)는 지분율(48.5%)에 따른 배정분 2800억원 중 600억원만 증자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실권할 예정이다. 이 계획과 함께 씨제이 시지브이는 씨제이만을 대상으로 45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증자를 진행한다. 이 때 씨제이는 현금이 아닌 씨제이가 100% 보유하고 있는 씨제이 올리브네트웍스 주식을 증자대금으로 낼 예정이다.
씨제이 시지브이의 이 계획은 다양한 이슈를 포괄한다. 미디어 등에선 씨제이 시지브이 경영 악화에 책임이 있는 씨제이와 씨제이 지배주주인 이재현 회장은 지배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한다. 씨제이는 현금·현금 출자를 통해 현재의 씨제이 시지브이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것이고, 씨제이는 현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를 하지 않기에 이 회장의 씨제이 지분율(42.07%)도 변동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또 씨제이 올리브네트웍스 주식의 현물출자는 ‘일감몰아주기 규제’(사익편취 규제)를 피해가는 부수적 효과가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는 있다. 현물출자를 통해 씨제이 올리브네트웍스는 씨제이의 손자회사가 되기 때문이다.
■ 이해충돌의 복합체, 재벌
현금이 부족한 씨제이의 재무상황 등을 염두에 두면 이번 씨제이 시지브이의 증자를 둘러싼 이런 의심 가득한 시선은 과도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씨제이와 그 지배주주의 입장에서만 그럴 뿐이다. 증자 계획 발표 이후 나타난 씨제이 계열사의 주가 흐름은 이번 계획의 숨은 본질을 웅변한다. 증자 당사자인 씨제이 시지브이의 주가는 11일까지 35.2% 급락했으며, 씨제이도 19.7% 떨어졌다. 자금 투여 회사, 자금 수혈 받는 회사 모두 패자이다. 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씨제이 시지브이의 자본확충계획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씨제이그룹의 다른 상장계열사 주가도 모두 엉망이 됐다는 점이다. 씨제이 이엔엠(하락률·8.7%), 스튜디오드래곤(18.7%), 씨제이제일제당(7.2%), 씨제이씨푸드(11.3%), 씨제이바이오사이언스(17.6%), 씨제이프레시웨이(3.6%), 씨제이대한통운(8.4%) 모두 주가가 하락했다. 동일기간 코스피는 1.6%, 코스닥은 0.9% 하락이니 시장 탓도 하기 어렵다. 한 계열사의 자본확충 계획이 주식시장을 매개로 그룹 계열사 모두가 타격을 받은 모양새다.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를 ‘이해관계충돌의 복합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는 재벌그룹에 내재한 시스템적 위험이 드러난 사례라고 본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뒤 우리 사회가 얽히고 섥힌 계열사의 복잡한 지배구조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지주회사 체제’에 내재한 또다른 리스크가 표출됐다는 것이다. 그 연결고리는 바로 ‘이중상장’이다.
■ 이중상장의 비극
재벌의 소유구조는 복잡하기 이를 데가 없다. 상호출자, 순환출자, 피라미드 등 거미줄 처럼 얽힌 계열사간 출자 구조 개선이 그간 재벌 개혁론자들의 관심사였던 까닭이다. 문제는 나름의 대안으로 제시됐던 지주회사 체제로 주요 재벌그룹들의 지배구조가 바뀐 뒤에 새로운 위험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뿌리는 지주사가 자회사를 100% 지배하는 ‘온전한 지주회사 체제’가 국내에 드물다는 점이다.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출자고리의 각 단계에서 모회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기는 커녕, 동시 상장돼 있다. 씨제이그룹만 해도 지주회사인 씨제이를 포함해 모두 8개 계열사가 상장돼 있다. 그 중 씨제이대한통운, 씨제이바이오사이언스, 씨제이씨푸드와 스튜디오드래곤 등 4곳은 자회사도 아니고 손자회사이다.
재벌의 이중상장 문제를 본격적으로 무대로 올린 것은 엘지(LG)에너지솔루션이다. 지난 2020년 12월 엘지화학이 상장을 전제로 배터리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엘지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는데 이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모회사 주주들은 회사의 유망사업부문으로 생각했던 특정사업부가 자회사로 분할된 후 상장됨으로써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침해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2년 경제개혁연구소는 이중상장에 따른 소액주주의 손실을 분석한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 보고서는 2017년~2022년 5월까지 국내 증시에 모·자 회사가 모두 상장돼 있는 42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여기에는 에스케이(SK)그룹(3개사), 카카오그룹(2개사), 현대중공업그룹(2개사)도 포함돼 있다. 이 분석은 모회사의 소액주주들이 자회사 상장시 공모주식을 인수하지 못함으로 감내한 기회손실(모회사의 소액주주들이 자회사가 공모하는 주식을 배정받았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 상장일 종가를 기준으로 기회손실 계산)을 추정하는 게 요점이었다. 그 결과 기회손실이 가장 큰 회사는 엘지에너지솔루션으로 4.68조~7.04조원으로 추산됐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하고라도 자회사 상장을 통해 발생한 41개사의 손실 총합은 4.24조~7.78조원로 분석됐다.
문제는 이러한 이중상장이 단지 모회사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끼치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시나리오를 하나 써보자. 스튜디오드래곤은 씨제이 이엔엠의 자회사이자, 씨제이의 손자회사이다. 씨제이 이엔엠의 드라마 사업부문이 2016년 5월에 물적분할된 회사이고, 2017년 코스닥에 상장하여 현재 4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만약 스튜디오드래곤 경영이 악화되어 자금조달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서게 되면, 최대주주(54.38%)인 씨제이 이엔엠에 신주배정분이 몰린다. 이 때 씨제이 이엔엠도 현금이 부족하다면 실권을 하거나 증자 대금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에 나서야 하고, 이 때는 그 자금 부담이 씨제이 이엔엠의 최대주주(40.7%)인 지주사 씨제이로 이어진다.
요컨대 스튜디오드래곤을 살리는데 스튜디오드래곤 일반주주의 돈, 씨제이 이엔엠과 씨제이 이엔엠 일반주주의 돈, 씨제이의 돈이 모두 동원되는 모양새다. 그 책임도 스튜디어드래곤 이사회인지, 씨제이 이엔엠 이사회인지, 씨제이 이사회인지 아니면 이재현 회장인지도 애매해 진다. 결과는 씨제이, 씨제이 이엔엠, 스튜디오드래곤 주가의 하락과 다른 씨제이그룹 상장계열사로의 위험전파일 공산이 높다.
■ 쪼개기 상장 넘어 포괄적 규제 검토해야
현재까지 이중상장에 대한 규제 논의는 조개기 상장(물적분할 후 상장)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씨제이 시지브이의 교훈은 쪼개기 상장이 아닌 계열사의 이중상장 자체의 문제점이다. 이미 상장되어 있는 자회사가 유상증자에 나설 경우 그 책임을 떠안은 모회사가 모회사 지배주주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할 수 있는데 그게 관련 상장계열사를 넘어 그룹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상장계열사가 많을수록 이와 연관된 다른 산업, 예를 들면 계열사의 자금조달을 주관하는 증권사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규제는 물적분할을 할 때 소액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한 방안과 쪼개기 상장시 모회사 소액주주들에게 공모주식의 50% 이상을 우선 배정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 해당 방안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이번 씨제이 사태를 계기로 쪼개기 상장뿐 아니라 이중상장 자체에 대한 규제까지 포괄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이중상장은 상장시 모회사의 소액주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장 후에도 여러 이해관계자를 지속적으로 피곤하게 만든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