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완 엘지(LG)전자 사장이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CES 2023)에서 북미이노베이션센터(NOVA) 사업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엘지전자 제공
엘지(LG)전자가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펀드 규모를 기존 2천만달러에서 1억달러(1300억원)로 대폭 확대한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스타트업 업계가 ‘투자 혹한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미래 유망 기술을 보유한 신생 기업들의 지분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인수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3일 엘지전자 설명을 종합하면, 미국 실리콘밸리 북미이노베이션센터(NOVA·노바)의 글로벌 스타트업 육성 펀드 규모가 1억달러로 확대됐다. 엘지전자가 2020년 말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조성한 노바의 초기 펀드 규모는 2천만달러였다. 투자 규모를 5배로 키우고, 벤처투자 전문업체 클리어브룩과 함께 투자금을 운용하기로 했다.
엘지전자는 디지털 헬스케어, 친환경 에너지, 인공지능(AI) 같은 신사업에 맞춰 스타트업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엘지전자는 “주력 사업분야 관련 유망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중장기적으로 해당 영역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엘지전자 사업보고서를 보면, 노바 출범 뒤 엘지전자는 차량용 소프트웨어 업체 소나투스(Sonatus), 에너지 제어 기술을 보유한 프랙탈 이엠스(Fractal EMS) 등에 투자했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CVC·기업 벤처캐피탈)는 2010년대 이후 외부에서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트랜드로 자리잡았다. 구글·인텔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투자회사를 만들어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삼성전자·에스케이(SK)·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도 자체 벤처캐피탈을 만들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대기업 임원은 “과거엔 회사를 만들어 잘되는 사업에 뛰어들면 됐지만, 지금은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져 많은 사업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 직접 사업을 하는 것보다 비용이나 위험 부담이 적고, 외부에서 성장 동력을 만드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생존에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벤처 투자가 얼어붙은 지금 같은 시기는 대기업들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투자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적기이기도 하다. 시장조사업체 크런치베이스 조사 결과, 올해 1분기 북미지역 스타트업 투자는 463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감소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챗지피티(ChatGPT) 운영업체 오픈에이아이(OpenAI)에 100억달러,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Stripe)에 65억달러를 투자한 것을 빼면, 벤처 투자액은 더 쪼그라든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스타트업들은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하는 재무적 투자보다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가 중장기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데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대기업 입장에선 얼어붙은 투자 시장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할 수 있어, 양쪽 모두에 윈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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