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과 동국제강, 금호석유화학, 디엘(DL), 하이트진로 등이 2021년과 2022년에 배임, 횡령, 사익편취 등으로 재판 중이거나 취업이 금지된 지배주주에게 근로소득으로 5억원 이상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취업제한 기간인 지난해 55억원 넘는 근로소득을 받았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인 상황에서 지난해에만 회사에서 72억원이 넘는 소득을 얻었다.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거나 취업이 금지된 지배주주들이 임원으로 계속 재직하며 수십억원의 보수를 챙긴 셈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9일 낸 ‘2021~2022년 상장회사 고액보수 임원 분석’ 보고서를 보면, 박 회장과 조 회장을 비롯해 장세주 동국홀딩스 회장, 이해욱 디엘(DL) 회장 등이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 중이거나 취업제한 처분을 받고도 회사로부터 수십억원의 임금을 수령했다. 장세주 회장은 특경법 위반으로 올해 11월까지 취업이 제한되었으나 지난해 8월 사면 복권으로 이 제한이 풀리기 전인 2021년에 57억원을 받았다. 지난해 보수는 58억원이다. 장 회장 쪽은 미등기 임원으로 근무해 취업 제한 조처와는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해욱 디엘 회장은 특경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인 상황에서 지난해 36억100만원을, 사익편취 혐의로 재판 중인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도 지난해 6억41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50억원 이상을 수령한 임직원들의 급여 소득 비중이 상여 소득보다 월등히 높은 문제도 드러났다. 기업 실적이나 성과에 상관없이 지배주주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초고액 소득을 보장받는다는 얘기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특경법상 배임, 조세포탈 혐의 유죄 판결에 따른 취업제한이 끝난 직후인 2021년 4월 회장에 복귀해 그해에만 한화와 한화솔루션, 한화건설에서 모두 84억100만원을 받았다. 모두 100% 고정급여다. 새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된 류진 풍산그룹 회장도 2021년 풍산과 풍산홀딩스로부터 77억6200만원을 받았는데 이 중 고정급여 비중이 85%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로부터 2021년에 받은 87억7600만원의 소득 중 고정급여 비중은 75%였다. 이는 지배주주가 아닌 임직원의 2022년 기준 급여와 상여(스톡옵션 포함) 비중이 각각 35%, 65%로 성과보수의 비중이 확연히 높은 것과 비교된다.
지배주주의 경우 비지배주주보다 퇴직금 수령액도 두배가량 높았다. 지난해 5억원 이상 퇴직소득을 올린 지배주주 11명의 퇴직금 평균 수령액은 24억5천만원이었고, 비지배주주 251명의 평균 수령액은 13억100만원에 그쳤다.
이승희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본급 산정 기준을 회장-사장 같은 직급이 아니라 등기이사-대표이사 등의 역할·직위 중심으로 바꾸고 성과급에서 고정보수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지배주주에 유리한 임금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주주가 경영진 보수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세이 온 페이’(Say-on-pay)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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