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8조원 매출을 기록한 국내 최대 해운사 에이치엠엠(HMM) 인수전이 국내 기업의 3파전으로 좁혀지고 있다. 자금 조달 능력이 충분치 않은 기업들이 인수전에 참여한만큼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에이치엠엠을 시장에 내놓은 채권단인 케이디비(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쪽은 30일 적격인수 후보 선정과정에서 하팍로이드를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예비입찰에는 엘엑스(LX)인터내셔널, 하림-제이케이엘(JKL)파트너스 컨소시엄, 동원산업, 독일 최대 컨테이너선사 하팍로이드 등 네 곳이 참여했다.
산업은행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는 공식 입장이지만 해운업계는 하팍로이드 배제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내 해운 산업 발전(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을 강조한 만큼, 세계 5위 해운사이자 경쟁사인 하팍로이드를 실사 등 본입찰에 참여시키는 건 부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와 부산항발전협의회 등은 “해운물류 노하우와 같이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자산의 해외 유출이 우려된다”며 하팍로이드 인수를 반대한 바 있다. 반대로 하팍로이드 배제를 공식화하면 자금력이 우세한 하팍로이드에 우호적이었던 에이치엠엠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남은 인수전도 순탄치 않다. 세 회사는 에이치엠엠(25조원)보다 자산규모가 작다. ‘새우’가 ‘고래’를 삼킬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에이치엠엠 매각 대금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약 6조원 안팎으로 예상되는데, 이들 세 회사의 현금 보유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올해 상반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가장 규모가 큰 엘엑스 인터내셔널이 1조2131억원 정도다. 그룹사 동원 등으로도 최대 2조4천억원(LX), 1조5천억원(하림), 6천억원(동원) 정도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때문에 세 회사는 재무적 투자자와의 손을 잡거나 인수금융을 일으키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하림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제이케이엘 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이뤄 인수전에 뛰어든 상태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4~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끌어들여와야 하는데 지급해야 하는 이자 등도 부담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치르느라 승리하더라도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큰 위험에 빠지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인수에 성공해도 해운 시장이 불황기로 접어들고 있어, 에이치엠엠을 떠받칠 체력이 될지도 관건이다. 지난해 코로나 특수로 5000대까지 뛰었던 상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900대로 떨어지는 등 침체기에 접어든 상태다. 상해컨테이너운임지수는 업황을 가늠하는 지표로 통상 1000선 수준을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산업은행은 이달 내로 적격인수 후보를 선정해 개별 기업에 통보할 예정이다. 이후 두 달 동안의 실사 기회가 부여된 뒤 ‘본선’격인 본입찰 진행,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주식 매매 계약 체결 순으로 진행된다. 산은은 “연내 매각 방침에 변화는 없다”며 “절차대로 매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