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이수만 전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 각사 제공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기업에 몰려든 개미 투자자들이 분쟁이 끝날 즈음엔 급격히 감소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24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0년 이후 경영권 분쟁을 겪은 10개 기업의 개인 소액주주 수(분기 말 기준)는 분쟁이 종결된 뒤 평균 26.7% 감소했다. 리더스인덱스는 “경영권 분쟁이 시작할 때 차익을 위해 몰려든 개인들이 분쟁이 끝날 조짐이 보이면 재빨리 발을 빼는 흐름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분석을 보면, 2003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를 두고 정상영 케이씨씨(KCC) 명예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을 때 이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당시 현 회장의 시숙부인 정 명예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6.2%를 사들이며 현대그룹 인수를 공식 선언했다. 현 회장은 정 명예회장과 수개월간 갈등을 벌이다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는데, 분쟁 직전인 2003년 상반기 말 기준 개인 소액주주의 수는 1만7828명에서 그해 말에는 1만1921명으로 33.1% 감소했다.
2003년 디엘(DL)그룹(전 대림그룹)에서도 이재준 창업주의 동생인 이재우 대림통상 회장과 이부용 고문이 숙질간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대림통상의 개인 소액주주 수는 2002년 말 1740명에서 분쟁 이후인 2003년 상반기 말에는 1311명으로 24.7% 감소했다.
2005년 7월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놓고 동생인 용성·용만씨와 갈등을 빚은 ‘형제의 난’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분쟁 직전인 2003년 상반기 말 1만212명이었던 개인 소액주주 수는 분쟁 이후인 2006년 초 7307명으로 28.4% 줄었다. 2009년 6월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경영권 분쟁을 전후해서도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의 개인 소액 주주 수가 각각 10.9%, 15.4% 감소했다.
과거 경영권 분쟁의 주체가 주로 형제·친족간 다툼이었다면, 최근에는 행동주의펀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연구소는 분석했다. 리더스인덱스는 “분쟁의 주체는 변화했지만 이들 기업의 개인주주 변화는 공통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진그룹은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이후 3세간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다. 한진칼 지분을 사들인 행동주의펀드가 2020년 3대 주주인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 연합을 결성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했다. 분쟁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9년 초 3만5926명이던 소액주주 수는 2020년 말에는 5만5801명까지 늘었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갈등은 2020년 11월 주요주주인 산업은행이 조 회장의 경영권을 지지하면서 일단락됐고, 한진칼의 개인 소액주주 수는 2021년 1분기 4만4847명으로 20%가량 다시 감소했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말 행동주의펀드의 주주 행동과 경영진-대주주 간 갈등이 불거지더니 하이브와 카카오 간에 치열한 인수전이 벌어졌다. 에스엠의 개인 소액주주 수는 2022년 3분기 말 5만2129명에서 카카오의 승리로 인수전이 일단락된 올해 2분기 말에는 3만8074명으로 26.4% 줄었다.
영풍그룹은 최근 공동 창업주 일가들 사이에 지분 경쟁이 가시화하면서 개미들이 몰리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쪽이 지분 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소액주주 수는 지난해 상반기 3만3783명이었는데 올해 상반기엔 4만6천25명으로 37.7% 증가했고, 영풍그룹의 알짜 계열사인 코리아써키트의 소액주주 수도 같은 기간 2만1345명에서 3만5863명으로 68.0% 급증했다.
김회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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