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일 사우디아라비아 ‘네옴 신도시 건설’ 현장에 헬기로 도착해 공사 현장으로 이동 중이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7일 취임 1년을 맞아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미래 사업 전략과 관련한 발표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조용히 지나갔다.
이 회장의 미래 전략을 엿볼 수 있는 건 투자 계획이다. 삼성은 지난해 5월 반도체·바이오·차세대 통신·신성장 연구개발(R&D) 등에 앞으로 5년간 450조원(국내 360조원 포함)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계획은 고 이건희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물러났다 2010년 경영 복귀 뒤 제시한 그룹 청사진인 ‘5대 신수종 사업’ 추진과 엇비슷하다. ‘미래 먹거리’는 장기 시계 속에 세워지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부친과 차별화된 청사진, 즉 ‘이재용 표’ 구상은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를 피하긴 어렵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이 회장과 비슷비슷한 시기에 3~4세 총수가 등판한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사업을, 엘지(LG)그룹은 배터리·전장 등 비투비(B2B) 사업을 중심으로 변화를 꾀하는 게 보인다. 반면 삼성은 미래 사업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회장의 침묵이 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을 지낸 한 재계 관계자는 “독보적 기술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방향을 정하는 건 총수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며 “총수는 모호한 일반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도전 과제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지난해 10월 사장단 간담회에서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란 화두를 던진 데 대한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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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기엔 과거와 현재의 제약도 만만치 않다. 삼성의 지지부진함 배경엔 그룹 컨트롤타워의 사업 조정과 전략 수립이 부실해서란 평가가 적잖다.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가 이 일을 하고 있다. 삼성 내부에선 ‘미래전략실 부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과거로의 회귀’란 비판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부딪힌다. ‘계열사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를 약속한 이 회장으로선 어느 쪽도 흔쾌히 손 들어주기 힘든 상황이다.
사업과 조직 개편은 모두 총수의 결단이 필요하지만 사법 리스크는 이 회장의 운신 폭을 좁히는 요인이다. 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돼 4년째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회장 취임 발표일은 물론 취임 1년을 맞는 지난 27일에도 그는 재판에 출석했다. 유죄 판결이 나오면 회장직 수행을 두고 또다시 취업 제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도 오리무중이다. 이 회장은 2020년5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했다. 약속을 이행하려면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안정적인 경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휴화산’이다.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수십조원 어치를 나눠 팔아야 한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재용 회장이 개정안 입법 저지만 매달리지 말고 결자해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김회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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