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약관 개정안…5개월간 피해 방치?
손해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실손 의료보험’의 중복 가입에서 비롯되는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감독원이 약관 변경 등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오는 9월부터 바뀐 제도를 적용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5개월 동안 추가적인 중복가입 피해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15일 실손 의료보험 약관을 고쳐 보험사의 상품 설명과 확인 의무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약관 개정안을 보면, 보험사는 실손 의료보험을 판매할 때 고객의 동의를 얻어 다른 보험사에 중복으로 가입했는지 조회해야 하며 고객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는 고객 자신이 직접 확인하도록 했다.
실손 의료보험은 가입자가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통원 치료를 받을 때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를 지급하는 상품이다. 따라서 여러 보험사에 중복 가입했더라도 가입자가 받을 수 있는 전체 보험금 액수는 실제 병원에 내는 의료비에 한정된다. 예를 들어 2개 보험사의 실손 의료보험에 가입해 두 군데에 보험료를 냈더라도 사고를 당해 100만원의 치료비가 나올 경우, 두 보험회사로부터 각각 100만원씩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 각각 50만원씩 총 100만원만 받을 수 있다.
현행 약관에 따르면 이런 내용을 보험사가 고객에게 알릴 의무가 없고, 중복 가입 확인도 가입자의 몫이다. 고객들은 여러 보험에 가입하면 보장도 많이 되는 줄 잘못 알고 실손 의료보험에 중복 가입하는 수가 많다. 10년 이상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손보사들은 약관의 허점을 악용해 고객들에게 중복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손보사 실손 의료보험 2360만 건 가운데 30%가량이 중복 가입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손보사들이 중복가입을 방치해 그만큼 추가 이득을 취해온 셈이다. 반면 지난해 5월부터 실손 의료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생명보험사들은 고객 동의를 받아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뒤 보험 계약을 맺고 있어 중복 가입에 따른 피해를 사전에 막고 있다.
금감원은 뒤늦게 보험사 쪽에 중복 가입을 확인하도록 하면서도 실제 적용을 5개월 뒤로 미뤄 비판을 사고 있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국장은 “중복 가입 확인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고, 약관 개정도 바로 할 수 있어 즉각 실시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약관 개선을 위해서는 규제개혁위원회를 거쳐야 해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9월 이전에라도 빨리 시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해명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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