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광고 발칙한 발상…‘나 광고 아니야, 영화야’
SC은행, 손현주 출연 영화 본뜬
4분짜리 ‘추리극 광고’ 130만 시청
KB국민카드도 ‘드라마 광고’ 선봬
SC은행, 손현주 출연 영화 본뜬
4분짜리 ‘추리극 광고’ 130만 시청
KB국민카드도 ‘드라마 광고’ 선봬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가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유명 연예인과 국회의원이 잇따라 실종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단서가 전혀 없는 실종사건에 시민들의 불안이 폭증하고, 형사 손현주는 사건전담반 반장을 맡아 수사에 나선다. 그러던 중 실종자 가운데 한 명이 초주검 상태로 발견된다. 병원에서 만난 그는 “다음이 내 차례인데”라는 알쏭달쏭한 말만 남긴 채 의식을 잃는다.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미궁에 빠진 사건을 추적하던 손현주는 실종자들이 모두 “은행에 다녀온다”며 나갔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알파벳들의 조합! 그는 단서를 잡은 듯 “에스시(SC), 에스시”를 외친다. 그 순간 ‘똑똑!’ 누군가 경찰서 형사계의 문을 두드리는데….
영화가 아니다. 지난 9일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공개한 스토리텔링(이야기가 있는 영화·드라마 형식) 광고다. 배우 손현주가 모델로 나선 이 광고는 <더 콜>이라는 제목부터, 추리극이라는 형식까지 여러모로 그가 타이틀 롤을 맡은 최근 영화 <더 폰>을 연상시킨다. 보통 30초 내외인 텔레비전 광고와 달리 4분 정도로 비교적 길게 만들어졌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 티브이 등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를 공개하고 새로운 영업채널인 ‘찾아가는 뱅킹 서비스’를 알리고 있다. 은행업계 최초로 시도된 새로운 형식의 이 광고는 10여일 만에 130만명이 시청을 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스탠다드차타드 쪽은 이런 인기에 힘입어 오는 20일 후속편도 공개할 예정이다.
최근 금융업계에 ‘스토리텔링 광고’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업계가 특유의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고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광고를 속속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비(KB)국민카드 역시 지난 11일 드라마 형식을 차용한 스토리텔링 광고를 새롭게 선보였다. 배우 김창완·황정민·송새벽이 각각 케이비국민카드의 사장과 상품개발팀장, 상품개발팀 대리로 등장하는 이 광고는 ‘다담카드’가 만들어진 과정을 담고 있다. 공개 일주일 만에 유튜브에서만 80여만명이 시청했다. 케이비국민카드는 2분30초짜리 이 광고를 30초 버전의 3부작으로 쪼개 텔레비전과 케이블에서도 방송하고 있다.
금융업계에서 ‘스토리텔링 광고’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올 상반기 삼성카드가 배우 유해진을 모델로 내세워 만든 ‘숫자카드’ 연작 광고가 히트를 치면서부터다. 1편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냈고, 시스템과 사랑에 빠진 현대인의 모습을 담은 영화 <그녀>(her)를 각색한 2편 역시 고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몸값이 높은 에이급(A) 모델을 이용한 스타 마케팅보다는 스토리 안에 ‘실용주의’라는 삼성카드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는 데 치중한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 이후 삼성카드와 비슷한 광고가 금융권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영국 등 국외에서는 ‘스토리텔링 광고’가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다. 칸 광고제 대상을 받은 도시바의 6편짜리 연작 광고는 올해 한국에서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국 백화점 존 루이스의 연작 광고 중 최근 공개된 ‘크리스마스 편’은 5일 만에 1000만 뷰를 돌파하는 등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금융업계가 스토리텔링 광고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돈’과 관련된 딱딱하고 부정적인 업계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케이비국민카드 윤창수 광고팀장은 “지난해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도 있었고, 카드업종 자체가 ‘소비를 부추긴다’는 식의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한 것이 현실”이라며 “스토리텔링 광고는 고객에게 쉽고 재밌게 다가가기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머지않아 금융업의 주고객이 될 젊은층이 영상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도 ‘스토리텔링 광고’가 늘어나는 주된 이유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신용원 홍보과장은 “스토리텔링 광고는 길이가 길어 유튜브 등을 통해 유통되는 인터넷 광고로 제작될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광고라 해도 재미만 있다면 5분 정도는 별 거부감 없이 투자한다.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에 기댄 스토리텔링 광고가 최근 두드러진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홍보 효과’ 역시 스토리텔링 광고가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고객을 스토리에 빠져들도록 만들면 광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상품(서비스)의 특징이나 장점을 더 빠르고 쉽게 이해시킬 수 있고, 상품의 슬로건이나 콘셉트를 각인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금융권 색깔 지운 광고 만들기: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금융권 색깔 지운 광고 만들기: 케이비(KB)국민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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