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은 지난 7월 서울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입찰 현장설명회에서 빠졌다. 수주 작업을 준비했던 삼성물산은 공사비 2조6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강남권 재건축 시장을 선도한 ‘래미안’ 브랜드도 있었지만 발을 뺐다. 앞서 서울 방배5구역 재건축 사업 입찰도 포기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퇴직자들은 최근 회사 상황에 대해 씁쓸해했다. 퇴직자 ㄱ씨는 “회사가 주택사업에 대한 방향을 내놓지 않고, 재건축 수주전에 열심인 다른 회사들만 보고 있으니 후배들이 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삼성물산은 2015년 제일모직과 합병한 지 2주년을 맞았다. 2015년 당시 헤지펀드 엘리엇과 주총 표 대결 등 합병 성사를 위해 삼성물산 직원들은 수박, 케이크 등을 들고 소액주주들을 찾았다. 합병되면 침체에 빠진 건설부문이 부활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회사도 ‘시너지 효과’를 약속했다.
2015년 7월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된 뒤 삼성물산은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합병의 시너지를 통해 삼성물산의 매출은 2014년 33조6000억원에서 2020년 60조원으로 확대돼, 연평균 성장률이 10.2%에 이를 전망”이라고 장밋빛 약속을 밝혔다. 국내 기업 합병 역사에서 보기 드문 건설과 상사, 패션과 레저, 식음료 등 각기 다른 사업을 한 지붕 아래로 모은 뒤 삼성물산은 주주들에게 ‘비전과 시너지’를 내걸었다.
2년이 지난 현재 뚜렷한 시너지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삼성물산은 올 상반기 매출 14조215억원, 영업이익 3924억원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4838억원이 늘고, 영업이익은 흑자로 전환하는 성과를 올렸다. 교보증권은 내년에 매출 30조원을 넘기고, 961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다봤다. 하지만 약속한 2020년 매출 60조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체 매출의 42%를 차지하는 건설부문 부진은 도드라진다. 건설부문 수주 잔고는 2015년 말 41조6050억원에서 올 상반기 27조8210억원으로 줄었다. 또 패션 부문은 지난해 상반기 9159억원에서 올 상반기 8667억원으로 매출이 줄었고, 그나마 레저와 급식이 같은 기간 매출이 11%, 3% 올랐다.
백광재 교보증권 연구원은 “패션 부문은 중국 사드 문제 때문에 국외 진출을 계획대로 하기 힘든 상태다. 건설 부문의 시너지는 삼성전자 공사를 예전보다 더 많이 따오는 것인데, 어차피 그룹 물량이라서 시너지라고 부르기도 어렵다”고 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합병의 시너지 효과는 사업의 특성에 따라 장기적으로 나올지 단기적으로 나올지 다르지만, 현재 삼성물산의 주가는 시너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희소식은 삼성물산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거의 유일하다. 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바이오에피스는 지난달 21일 일본 다케다제약과 신약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고, 지난달 25일에는 복제약 휴미라의 유럽 판매허가 승인을 받았다. 이를 두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출석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산업에 대한 노력은 ‘이 부회장의 능력 입증’을 위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가장 중요한 논거였던 시너지 효과 입증을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합병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봤다. 합병 전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대주주에서 합병 뒤에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의 대주주에 등극했다.
그사이 합병을 위해 분주히 일한 직원에겐 구조조정이 닥쳤다. 2015년 말 1만2083명이었던 직원이 지난 6월 말 9886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건설부문에서만 7952명에서 6150명으로 1800여명이 줄었다.
더욱이 향후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많지 않다. 올 상반기 신규 수주는 2조438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수주액의 절반에 그쳤다. 조윤호 동부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 영업이익의 66~85%를 건설부문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실적의 핵심”이라며 “2년 연속 신규 수주가 부진하면서 내년 이후 실적 개선을 이끌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호황으로 건설 수주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내부거래로 시너지효과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결국 장밋빛 전망으로 치러진 삼성물산 합병은 오히려 직원들에게 ‘부메랑’이 된 셈이다.
삼성물산 내부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삼성이 계열사의 독립경영을 강화한다고 해놓고선 삼성물산은 여전히 그룹 눈치만 보고있다. 건설 부문 직원들이라도 일할 수 있게 주택 사업을 분사 형태로 내보내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쪽은 회사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몇 년 전부터 양보다 질 중시 경영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것으로 설명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재무 안정성을 위한 노력에 힘입어 국내외 신용등급은 합병 전 AA-(국내), BBB+(국외)에서 AA+, A-로 올랐다. 차입금도 합병 전 7조5000억원에서 올 2분기 말 6조1000억원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대규모 적자를 낸 오스트레일리아 로이힐 프로젝트나 부산신항만 지분 매각 등 부실을 떨어내는 등 재무 안정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또 바이오로직스 상장과 해외시장 확대 등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했고, 식음사업도 상사의 역량을 활용해 중국과 베트남에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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