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지난 5월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진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규탄하고 조 회장 일가에게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갑질·밀수·횡령 등에 반발해 조양호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대한항공 직원연대’ 이름으로 활동해 온 대한항공 직원들이 부당하게 인사 조처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느닷 없는 인사 발령으로 제주도·부산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들은 기존 대한항공 노동조합이 아닌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대한항공이 새 노조 구성을 방해하기 위해 총수일가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큰 직원들을 색출하고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는 반발이 예상된다.
대한항공에서 짧게는 15년 길게는 26년 일한 정비사 3명은 지난달 27일 <한겨레>를 만나 닷새 전인 22일 대한항공이 자신들을 포함해 4명의 직원을 지방으로 발령 낸 인사는 “직원연대 활동을 하고 새 노조 설립 준비를 하는 것에 대한 보복성”이라고 주장했다. 50대의 ㄱ씨는 “6월20일 관리자가 면담을 하자고 해 만나 보니 제주도로 가서 일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며 “내가 ‘20년을 훌쩍 넘겨 전문적으로 정비를 해 온 사람에 대한 대우가 고작 이것이냐, 못 가겠다’고 했지만 회사 인사 담당자는 ‘회사에서 가라면 싫은 나라로 가서 일하라고 해도 가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면담 이틀 뒤 제주도의 한 본부로 인사 발령이 났다. 25일부터 제주도에서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제주도 근무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언제 인천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ㄱ씨는 “최소한의 신변 정리 시간도 주지 않았다”며 “사정을 해서 7월 첫째 주부터 출근을 하기로 했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 자녀 2명이 있어 혼자 제주도로 급히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40대 후반의 ㄴ씨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김포에서 부산으로 인사 조처가 된 것을 알게 됐다. 그는 “회사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부산에서 인력이 필요해 지역 재배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며 “그러나 이런 식의 인사 조처는 전례가 없다. 게시판에 인사 조처 내용이 올라오자 내가 일하던 부서에서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며 사람들이 난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패닉(공황) 상태가 돼서 게시판을 본 날에는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고 했다.
ㄴ씨와 마찬가지로 부산으로 옮겨 가라는 지시가 떨어진 ㄷ씨도 “김포나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인력이 필요해지는 경우는 보통 모집 공고를 띄우고 희망자도 꽤 되는 편”이라며 “그러나 이번에는 모집 기간도 없이 갑자기 인사가 났고, 부산 쪽 지인에게 물어보니 ‘인력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ㄴ씨와 ㄷ씨 모두 자녀가 2∼3명씩 있어, 가족들을 남겨놓고 홀로 부산으로 급히 이사를 해야 한다. ㄴ씨와 ㄷ씨 역시 따로 정해진 기간이 없어 부산에서 얼마나 오래 일해야 할 지를 알 수 없다.
이번 인사를 ‘보복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최근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탈법·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알려 온 ‘대한항공 직원연대’의 운영위원들이다. 특히 이들은 기존 대한항공 노동조합이 직원들의 노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경영진의 행태를 비판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ㄱ씨는 “우리를 김포·인천 등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발령내 버리면 조직 구성을 못 할 거라고 회사가 생각하지 않았겠냐”며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철저하게 익명으로 활동해 왔는데 어떻게 우리를 알아냈는지 모르겠고 무섭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원활한 현장 인력수급을 위해 경력과 자격증 등을 고려한 일상적인 본부 안에서의 발령”이라며 “본부 안에서 지역만 바꾸는 식의 인사가 이루어지는 경우 본사의 인사부가 개입하지 않는다. 또 필요에 따라 면담 등을 통해 원상회복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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