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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SK, 소·부·장 계열사 챙기기…‘중소기업 생태계’ 위협 논란

등록 2019-09-19 18:11수정 2019-09-20 10:36

SK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집중”
반도체 산업 수직계열화 나서
자회사 통해 중소기업과 경쟁

중기 독자 개발한 소재·부품
주문량 줄어들고 가격 떨어져

“대기업이 중기 물량 흡수” 비판에
SK “시장 키워 함께 성장하고 있어”
그래픽_고윤결
그래픽_고윤결
“중소기업이 적자를 감수해 가며 반도체 재료를 개발했더니 정작 구매처인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새로 생긴 손자회사 물량을 납품 받더라. 이런 환경에서 어느 기업이 독자기술을 개발해 성장하고 고용을 늘리겠나.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함께 커 간다는 생각으로 경영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지난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오른 글이다. 최근 에스케이그룹 계열사들이, 이미 중소기업이 독자 개발한 반도체 소재·부품 분야에 속속 진출해 에스케이하이닉스 납품 권한을 따내면서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 수출규제 강화로 첨단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에스케이그룹의 반도체 산업 수직계열화 행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에스케이그룹은 “일본산 소재·부품을 대체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에스케이그룹은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한 이듬해인 2012년부터 반도체 재료·부품 사업에 동시다발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주로 지주사인 에스케이㈜의 자회사인 에스케이머티리얼즈와 에스케이씨(SKC)가 일본 기업과 합작사를 세우거나 관련 사업 분야를 키우는 방식이다. 안정적인 에스케이하이닉스 매출이 이들 자회사의 성장 토대가 됐다.

반도체 관련 에스케이 계열사들의 사업·감사보고서를 보면, 2015년 에스케이㈜가 오시아이(OCI)머티리얼즈를 인수한 에스케이머티리얼즈는 2016년 일본 기업 트리케미칼과 65대 35로 합작해 지르코늄 전구체 제조사인 ‘에스케이트리켐’을 설립했다. 이 기업은 매출의 90% 이상이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 나온다. 이에 따라 10년 전 지르코늄 전구체를 독자 개발해 에스케이하이닉스에 공급해온 중견기업 메카로의 판매 물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메카로의 2017·2018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에스케이트리켐은 “높은 진입장벽 탓에 신규 업체가 진출하기 매우 어렵다”는 전구체 시장에서 1년 만에 경쟁사로 이름을 올렸다.

에스케이머티리얼즈는 2017년 6월 또 다른 일본 기업 쇼와덴코와도 51대 49로 합작해 식각가스 공급업체 ‘에스케이쇼와덴코’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에스케이하이닉스 매출 비중은 시장 진입 2년 만에 81%에 이르렀다. 에스케이쇼와덴코는 2017년 식각가스 플루오르메탄 생산을 시작하면서 “쇼와덴코가 만든 헥사플루오르도 순차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헥사플루오르는 국내 중견기업 후성이 단독 개발해 판매 중인 품목이다. 에스케이쇼와덴코는 최근 헥사플루오르 성능평가까지 진행했으나 품질 문제로 양산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 그래픽을(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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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케이㈜의 또 다른 자회사인 산업용 필름 제조사 에스케이씨도 자회사를 통해 반도체 중소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에스케이씨의 자회사 에스케이씨솔믹스는 에스케이하이닉스가 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2012년 이후 실리콘 소모품 생산량을 집중적으로 늘렸다. 실리콘 소모품은 중견기업 월덱스가 5년 동안 100억여원을 들여 국산화한 품목이다. 두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5년간 100억∼200억원대에 머물렀던 에스케이씨솔믹스의 실리콘 소모품 매출은 2015년 392억원, 2018년 524억원으로 가파르게 뛰었고 에스케이하이닉스와의 거래도 2015년 22%에서 2018년 54%로 급증했다. 반면 월덱스의 매출은 2011년 914억원(연결기준)에서 2013∼2016년 600억원대로 꺾였다. 2011년 약 40%를 차지했던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월덱스 주문량은 2013년 30%대로 줄어들었다.

에스케이씨는 올 초 반도체 연마 공정에 쓰이는 시엠피(CMP)슬러리와 블랭크마스크 사업에도 뛰어들겠다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시엠피슬러리는 중견기업 케이씨텍이, 블랭크마스크는 에스엔에스텍이 수년간 기술 개발해 국산화한 품목이다. 에스케이그룹은 “품질과 제품 형태가 달라 시장이 겹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중소기업은 에스케이가 전략을 수정하거나 목표 시장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에스케이그룹의 이런 수직계열화 행보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반도체 소자 기업이 차세대 소재·부품 필요에 맞춰 신속하게 계열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소재·부품 시장에까지 대기업이 전방위적으로 진출해 중소기업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메모리 분야에서 두 번째로 시장 경쟁력이 큰 에스케이하이닉스의 거래량 변동은 중소기업 생존과 직결된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대기업 계열사는 태생적으로 인텔·마이크론 등 경쟁사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반도체 소재기업에 10년 몸담은 한 전문가는 “반도체로 수조원 버는 대기업이 소재·부품까지 일일이 해야 하냐”며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시장에 존재감도 없던 계열사들 물량을 사들이면서부터 중기 판매량과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비판했다.

에스케이그룹은 “중소기업 물량을 빼앗는 게 아니라 전체 시장을 키우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스케이의 진출과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전구체와 특수가스 시장 규모가 두 배 이상 커졌다는 주장이다. 에스케이쇼와덴코가 일본에서 플루오르메탄 원천기술을 들여와 국산화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생 계열사들이 설립 2년 만에 에스케이하이닉스 납품 권한을 따낸 데 대해서는 “실무진들이 치열하게 기술경쟁을 해서 따낸 결과”라고 했다.

신다은 최하얀 기자 downy@hani.co.kr

하이닉스 시절엔 중소업체와 손잡고 국산화 달성

SK 인수이전 2001년 경영난때
협력체제로 업체들도 성장 이뤄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처음부터 국내 반도체 중소기업들과 경쟁 관계였던 건 아니다. 에스케이그룹 계열사가 되기 이전인 2001년 유동성 위기를 맞이한 하이닉스반도체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국내 업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치킨게임’으로 재무구조가 불안정해지면서 미국 마이크론의 매각 대상이 됐다. 그러나 하이닉스 이사회는 ‘투자 없이 1년에 공장을 1개씩 짓겠다’고 채권단을 설득해 매각을 부결시켰다. 마치 공장 1개가 새로 지어지는 것처럼 제조 물량을 2배로 늘리고 소재 부품 원가도 낮추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5대 핵심 공정을 중심으로 효율성 개선 작업에 뛰어들었고 소재·부품도 국산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가격 조정이 불가능한 외국산과 달리 국산 업체들은 ‘선공급 후지불’ 방식에도 동의했고 가격 할인에도 적극적으로 응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주재 아래 생산팀·연구팀·구매팀이 월 1회 기술운영위원회(TSC)를 열고 국산화 현황을 점검했고 해마다 휴가, 회식비, 인사고과 반영 등 여러 방식으로 포상했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에서 일했던 박대영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평가실험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오히려 ‘사전에 문제를 예방했다’고 칭찬했다”며 “모두가 절실했고 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일본 히타치사가 독점 공급하던 ‘슬러리’도 국내 장비제조사 케이씨텍과 손잡고 국산화를 이끌어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팀과 하이닉스반도체 직원 3명이 수개월 간 매달려서 이룬 결과다. 기존 거래처가 가격 할인 공세를 해왔지만 하이닉스반도체는 국산화를 끝까지 지원했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이었던 최진석 진세미 사장은 “시험용 양산라인을 따로 빼는 것도 당시엔 과감한 선택이었다. 하이닉스가 제품 평가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핵심 소재 국산화는 요원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반도체 중소기업들 가운덴 하이닉스반도체와의 구매 실적을 발판 삼아 성장한 기업들이 많다. 영창케미칼·케이씨텍·솔브레인·주성엔지니어링 등이 2000년대 하이닉스반도체와의 거래를 물꼬 삼아 기술력을 높인 사례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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