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호 디자이너(왼쪽)와 박남영 빈폴 사업부장(상무). 사진 삼성물산 패션부문 제공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6년 만에 정구호 디자이너와 다시 손잡았다. 주력 브랜드인 ‘빈폴’ 재단장을 위해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둘째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이끌다가 지난해 말 전문경영인 체제가 된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부진 탈피에 성공할지 관심이 모인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15일 빈폴 출시 30주년을 맞아 ‘한국적 헤리티지(유산)’를 앞세운 새 콘셉트를 발표했다. 브랜드 재단장을 지휘한 정구호 컨설팅 고문은 “1960~70년대 서양문물이 한국 정서에 맞게 토착화한 것을 재해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복고풍을 강조해 밀레니얼 세대를 정면 겨냥한 것이 특징이다. 자전거 모양의 로고는 바퀴살을 없애 단순화했고, ‘빈폴 전용 서체’도 선보였다. 이번 콘셉트는 내년 봄·여름 제품부터 적용되며, 개점일(1989년 3월11일)에 착안한 글로벌 전용 제품 ‘890311’도 내놓을 예정이다.
실적 반등 여부가 주목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15·2016년 각각 영업손실 89억여원과 452억여원을 기록했고 2017년 흑자 전환했지만 영업이익률은 1%대에 그쳤다. 경쟁업체 한섬과 엘에프(LF)의 영업이익률은 6~7%다. 중국인이 선호하는 숫자 8을 브랜드명에 넣는 등 중국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진 에스피에이(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 ‘에잇세컨즈’가 오프라인 매장을 2년 만에 철수하고 지난해 150억원 적자를 본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지난해 이서현 전 사장이 3년 만에 물러나면서 매각설까지 불거졌다. 건설·상사·바이오 등이 포함된 삼성물산 전체 매출 대비 패션부문 비중이 5~6%에 그치는 데다, 갤럭시·빈폴 등 주력 브랜드의 성장세가 둔화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전신인 제일모직은 삼성상회(현 삼성물산)·제일제당과 더불어 삼성그룹의 출발점이라는 상징성을 빼면 사업성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업체들이 화장품, 생활용품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연령대 하향조정을 꾀하는 동안, 의류 브랜드만 운영하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전 사장 퇴진으로 박철규 부사장 체제로 전환한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온라인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 효율화를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2017년 ‘빈폴키즈’를 온라인 전용으로 전환한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를 온라인 브랜드로 3년 만에 되살렸다.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5년 6~7%에서 지난해 13%로 커졌다. 아울러 빈폴 등 주력 브랜드의 핵심 연령대를 30~40대에서 20~30대로 낮추는 작업을 통해 소비자층을 넓히겠다는 생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띠어리부터 에잇세컨즈까지 브랜드 구성은 탄탄한 편”이라며 “다만 규모의 경제가 핵심인 에스피에이 브랜드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어떻게 풀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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