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40대가 되기 전에 그룹을 물려받은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은 몇년 전만 해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중 막내였다. 하지만 최근 2~3년 새 주요 그룹 총수들이 바뀌면서 그는 10대 그룹 총수의 평균 나이를 끌어올리는 존재가 됐다.
3일 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공시 등을 종합하면, 삼성·현대차·에스케이·엘지(LG)·롯데·한화·지에스(GS)·현대중공업·신세계·한진 등 총수가 있는 10대 그룹 총수의 평균 나이는 63.2살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하는 ‘동일인’ 기준이다. 공정위는 실질적인 경영 영향력과 소유 지분 등을 검토해 매년 동일인을 지정한다. 2017년 10대 그룹 총수의 평균 나이는 73살이었다. 두 해 만에 총수 평균 나이가 10년여 젊어진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끄는 경영인(이하 실질총수)을 중심으로 계산하면 10대 그룹 실질총수의 평균 나이는 59.1살로 내려간다. 현대차그룹 동일인(총수)은 정몽구(82) 회장이지만 지난해 말부터 정의선(50)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반을 맡고 있다. 이날 허창수(72)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허태수(63) 지에스홈쇼핑 회장이 경영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지에스의 실질총수도 허태수 회장이 됐다.
2년 여만에 10대 그룹 총수들의 평균 나이가 10년여 젊어진 데는 기존 총수의 건강 등의 이유가 크다. 여기에 최근 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좀 더 젊은 경영자가 이끌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젊은 총수들이 공정거래법상 명실상부한 총수인 ‘동일인’의 지위에 오르려면 ‘지분 승계’와 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10대 그룹 총수 중 가장 젊은 쪽에 속하는 조원태(45) 회장과 구광모(42) 회장은 아버지의 별세로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지난해 5월 동일인 자격을 받은 신동빈 롯데 회장은 전임 총수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00살을 바라보는 고령인 점이 고려됐고,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도 유사한 이유로 같은 시기에 총수에 올랐다. 정창욱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지분 승계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일인 변경을 한 삼성과 롯데 사례는 예외적인 결정이었다. 전임 동일인의 건강상 이유를 깊이 고려했다”고 말했다.
총수가 건강상 이유 없이 경영권을 넘겨준 사례도 다수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대표적이고, 허태수 회장도 비슷한 경우다. 정몽구 회장은 여전히 회장직은 물론 ‘동일인’ 자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영 전반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말부터 진두지휘하고 있다. 허창수 회장 역시 동일인 자격은 유지되지만 경영은 허태수 회장이 맡는다. 이런 사례는 비교적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관련이 깊다. 이날 퇴임한 허창수 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다시 도전하는 데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시기”라며 ‘새로운 리더’의 덕목으로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꼽았다.
정의선 수석부회장 등 일부 젊은 총수들이 법적인 총수, 즉 동일인의 지위에 오르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지분 승계 과정이 험난할 가능성이 커서다. ‘세대교체’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한화·신세계·현대중공업의 속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승계 뒤에도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두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불법·편법 논란을 비켜가기 어렵다. 2010년대 초반부터 승계를 모색해온 삼성이 딱 들어맞는다. 한진 조원태 회장 또한 안정적인 그룹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터라 언제든 형제간 다툼이 벌어질 여지가 있다. 정창훈 공정위 과장은 “삼성·롯데 등 예외 사례를 빼면 지분 승계가 마무리되어야만 동일인 자격 부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난맥상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한국 재벌 체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